보통생각

취업 실패 지방대생 김범초씨에게

죽장 2011. 12. 31. 17:59

[2011.12.31, 조선일보 공감편지]

취업 실패 지방대생 김범초씨에게

시인 신달자

 

졸업을 앞둔 지방 A대 4학년 김범초(27)씨. 청각장애인인 홀어머니와 세 명 동생을 돌보며 취업을 준비 중이다.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목표 하나로 살아왔다.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대학에 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취업해서 더 나은 보수를 받겠다”는 꿈이 있었다. 지난 6년간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빌딩 청소부, 건설 현장 일용직 등 온갖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다. 요즘 김씨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다. 기업체에 다섯 번 원서를 냈지만 내리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스펙’이 부족해 지원할 엄두조차 못 내는 곳은 더 많다.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지방대생이라 차별받는 건 아닌지….” 김씨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탁상훈 기자 if@chosun.com

  지금, 바로 지금, 졸업을 앞두고 사회라는 불안한 문턱을 넘게 되는 너희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시인의 과장법과 어른들의 맹목적인 '잘되겠지'의 긍정법을 모두 버리고 나는 너희에게 진실이라는 아픈 가슴으로 다가가 손을 잡고 싶다. 손을 잡고 "힘내!"라고 가장 열렬한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
  특히 지방대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훨씬 불안과 절박감의 무게가 더할 것이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생의 무게에 놀라며, 던져버릴까 아니면 쓰러지더라도 등에 져야 할까 망설이고 있지는 않은지 나도 마음이 저리다.
  그러나, 그러나 너희들은 대책 없이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거리에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보며 "뭘 하지?"라고 되묻곤 했던 것이다. 자존심이 구겨지고 인격이 박살 나고 대학 4년이 휴지 같다고 느끼는 그런 쓰라린 상처들은 사회의 첫발에선 기본 과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은, 암담하고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런 때에 '올바르게 생각하는 법'이야말로 앞으로 내일을 이겨내는 힘이며 대학 4년을 헛되이 묵살하지 않는 법이라는 것 아니겠니.
  졸업과 취업 사이에서 많이 외로울 거야. 비바람 치는 외곽에 서 있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분명 대학 졸업생들이다. '다름'을 장점으로 생각하면 안 될까. 세상이 그렇게 생각 안 하면 너희가 그렇게 생각해서 '다름'의 아주 작은 것부터 밑돌을 놓는 심정으로 세상과 마주 섰으면 한다. 사회에 나오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나는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다. 당연한 순서다. 약자를 배워야, 약자의 고통을 배워야, 약자의 부족함을 채우는 기간의 인내를 감지해야만 그 정신이 너희를 사회적 강자로 만들 것이라는 걸 나는 굳게 믿는다.
  너희는 부모님의, 학교의, 사회의, 국가의 도움을 받았다. 절대로 이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함께 걸어온 동행자들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희망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니.
  내가 지방대학 교수 시절 한 학생이 "희망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나도 그때 희망의 존재에 대해 불신하고 있었고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나는 희망은 사람의 정(情)과 같아서 있기는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이야말로 눈부신 기적의 힘이 아니겠니? 그렇게 말하니 나도 힘이 생겼다. 희망은 생물과 같아서 버리면 살인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희망은 바로 너희의 생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희망은 계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성심으로 오르고 낮은 첫 계단의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때 희망의 높은 계단에 오를 수 있을 거야.
  내가 있던 지방대학 1회 졸업식 때 나는 말했다. "여러분, 오해 없기 바란다. 가령 구두 하나를 닦을 때라도 '내가 그래도 대학을 졸업했는데 구두를 닦아!'라고 말하지 않고 '그래도 내가 대학 졸업생인데 구두 하나라도 잘 닦아야지'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구두 주인이 내 인생에 이렇게 구두를 성실하게 닦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말한다면 너희는 이미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오래전 일이다. 그들은 '나'라는 기적을 버리지 않았고 사회의 일꾼으로 잘 살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기가 가져다주는 정신의 황무지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흐린 날에도 태양은 분명 존재하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죽을 각오는 바로 살려는 각오 아니겠니. 너희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렴. 누가 부르지 않아도 자신의 장점을 찾아 성심을 가한다면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상을 버리지 않는 것은 세상은 열정과 성실과 희망을 품은 자를 결코 내치지 않기 때문이다.
  영남에 있는 대학 졸업생인 W군은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어머니가 공장일을 하면서 받은 기초수급자라는 도움을 소중하게 받아 열심히 노력해 구미의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일을 얻지 못한 호남의 김범초군도 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청각 장애 어머니와 기초수급자로 살았지만 일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러나 모두 국가의 도움을 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아름다운 덕목이 반드시 강한 의지의 인간으로 성장시키리라 믿고 김범초군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란다. 이 믿음을 가지는 이유는 한 가지다. 너희는 모두 이 나라의 소중한 젊은이라는 것이다. 바로 앞의 내를 건너지 못하면 건널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일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너희의 열정이 바로 극복의 힘이며 사회를 바로잡는 힘일 것이다. 자, 손을 불끈 쥐어라. 불꽃 튀는 고함을 한번 지르고 눈은 크게 뜨고 가슴은 깨어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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