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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성적과 정치

죽장 2011. 7. 11. 11:50

[2011.7.11,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시험성적과 정치

 

'정치는 2류들의 게임'이라고 한다. 시험에서 수석합격을 했던 수재들이 정치에 들어가 2류들과 난타전을 벌이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조선시대 시험성적이 가장 좋았던 인물이 율곡 이이(李珥·1536~1584)이다. 9번 수석을 한 구도장원(九度壯元)의 기록보유자이다. 그러나 48세에 죽었다. 너무 빨리 갔다는 느낌이 든다. 머리 좋은 사람은 애매한 상황에서 머리 나쁜 사람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저술가로 꼽히는 두 인물이 원효대사와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다. 다산은 과거에서 차석을 하였는데, 수재(秀才)가 유배(流配)와 만나니까 주옥같은 저술이 쏟아져 나왔다. 강진으로 유배를 가지 않고 서울에서 계속 정치를 하였더라면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 율곡처럼 빨리 죽었을까? 물론 예외도 있다. 그때 과거시험에서 다산을 제치고 수석을 차지한 인물이 서영보(徐榮輔·1759~1816)이다. 대제학을 지냈고 '만기요람(萬機要覽)'의 저자이다. 서영보의 아버지인 서유신(徐有臣)도 과거 수석을 하여 대제학을 지냈고, 서영보의 아들인 서기순(徐箕淳)은 차석을 하였다. 서영보의 직계 6대 후손이 친박의 서청원이다.

민주당천정배는 신안군 암태도(岩泰島)라는 섬 출신인데, 흔히 목포의 수재라고 일컬어진다. 중2 때 전남학술경시대회에서 수석을 하였고, 서울법대도 수석입학이다. 딸 2명도 공부를 잘해서 모두 서울대를 나와 큰딸은 사법고시에 합격해 부산동부지원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둘째 딸은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으로 있다. 민변(民辯)을 창립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 산파 역할을 했지만 현실 정치에서 큰 재미는 못 보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이 천정배라면 한나라당원희룡이다. 제주 출신인 원희룡은 학력고사에서 전국수석을 했고 서울법대 수석입학에다가 사법시험에서도 수석합격을 하였다. 특히 학력고사 전국수석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수재임에도 불구하고 책상물림의 얼굴이 아니라 말 타고 다니는 북방유목민족 특유의 야성(野性)이 들어가 있다. 그런 원희룡도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4위에 그쳤다. 인삼이 홍삼으로 변하려면 한번 솥단지에 찌는 법제(法製)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법제(政治法製)를 거쳐야 빨리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