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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무너진다

죽장 2011. 6. 29. 10:25

[조선일보, 2011.6.24~6.29]

교실이 무너진다

 

[1] 통제불능에 빠진 수업시간(6.24)

  서울의 초등학교 A교사는 최근 수업 시간에 친구와 떠드는 6학년생을 꾸짖었다가, "씨×" "병신 같은 ×"이라는 욕을 들었다. 같은 날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하얀 선을 그리자 3~4명의 학생이 뒤를 따라오며 선을 지웠다. 세 차례나 "하지 말라"고 해도 학생들은 "뭐 어때?"하고 계속 선을 지웠다. 경기도의 중학교 B교사는 며칠 전 2학년 수업 중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졸면 안 되지. 바로 앉아"라고 했지만 학생은 일어나지 않았다. B교사가 재차 "일어나라"고 하자 학생은 몸을 일으키며 "왜 그러는데? 내가 언제 잤다고? 그냥 엎드려 있는 것도 안 되나?"라고 했다. 학생은 다시 팔을 베고 책상에 엎드렸다.

  학생들의 막된 행동으로 초중고 교실이 '통제 불능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학생이 교사에게 대들고 욕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 되었고, 이제 교사를 구타하고 수업 중에 교사에게 욕설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례까지 빈발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서울시교육청 등이 엎드려 뻗치기, 운동장 돌기 같은 벌 주는 것까지 제한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고3 학생이 지각을 자주 하자 30분 일찍 등교하도록 했다. 학생의 어머니는 다음날 학교로 찾아와 "지각을 해도 가만 내버려두지 왜 일찍 나오라고 하느냐"고 따졌다. "아침에 아버지가 차로 데려다 줘야 하는데, 술도 못 먹고 일찍 들어오라는 것이냐"고 했다. 이 어머니는 "수업시간에 빼앗은 휴대폰도 애한테 돌려줘라. 안 그러면 인터넷과 교육청에 민원 넣고 교장 교감한테 말해서 가만 안 두겠다"고 교사를 협박했다.

  경기도의 다른 중학교 교사는 염색과 화장을 한 1학년 학생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가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학부모는 학교에 찾아와 "담임도 아닌데 왜 우리 애를 자꾸 지도하느냐"며 "선생님 때문에 애가 스트레스받는다. 앞으로 계속 뭐라고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2] 휴대전화에 점령당한 교실(6.25)

  24일 오전 9시 30분쯤 인터넷 방송 사이트 '아프리카'에 '생방 수업중, 시키면 다한다!'라는 제목이 달린 동영상이 떴다. 고등학교 남학생들 얼굴과 교실 모습이 보였다. 교사가 "기준금리가 올라가면…"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교실 현장 생방송'은 화면이 흔들리면서 계속됐다.

  이 동영상을 내보낸 학생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옆자리 학생부터 맨 뒷줄에 앉은 학생을 찍기도 했다. 한 학생은 카메라를 피하려고 종이로 얼굴을 가렸다. 카메라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농담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방송 4분째, 촬영자는 "선생님한테 걸렸어요. 5분 후에 다시 (생방송) 할게요"라고 말했다. 이어 교사가 다가오자 교과서로 휴대전화를 가렸다.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서 이 동영상을 보던 회원이 채팅 창에 '(선생님에게) 때려달라고 말하라'고 요구하자, 이 촬영자는 교사에게 "(옆자리 학생을 가리키며) 얘 좀 때려주세요" 했다. 교사는 "휴대폰 집어넣어라"고 말하고 지나갔다.

  전국 곳곳의 교실 상황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 학생들이 교사 몰래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고, 교사를 놀리는 장면이 여과 없이 다른 교실,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 보인다. 많은 교사와 학생의 초상권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수업시간 생중계'는 전국 중·고교 학생들에게 '신종 놀이'가 됐다. 이는 청소년들 사이에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3] 女교사 수난 시대(6.27)

  교사 2년째인 경남의 한 중학교 A(25) 교사. 제자들과 평생 지내면서 교육에 헌신하겠다는 꿈을 갖고 교편을 잡은 그에게 현실은 달랐다. 지난달 1학년 수업 중이었다. 쉬는 시간 교탁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지나가다 스쳤겠지'하고 넘겼는데, 한 학생이 뒤를 지나갈 때마다 엉덩이를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A 교사는 이 경험을 다른 젊은 여성 교사들에게 얘기했더니 대부분이 "나도 같은 일을 당했다"고 했다.

  교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교사들은 남성 교사들에 비해 학생들에게 당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 학생들은 특히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여성 교사를 함부로 대한다. 성인만큼 덩치가 큰 일부 학생이 여성 교사를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폭행을 가하고 성희롱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지난달 하교 시간에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무실에 학부모가 급하게 찾아왔다. 이 학부모는 "그 X(담임 교사) 어디 있느냐. 나오라고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동료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젊은 X이 우리 애 담임이라는데, 반성문을 하도 쓰라고 해서 애가 팔이 아프다고 난리다"라고 했다.

  작년 첫 발령을 받은 여성 교사(26)가 친구들 돈을 뺏고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는 1학년 학생에게 반성문을 여러 번 쓰게 한 것이었다. 결국 이 학부모는 그 여성 교사를 만나 "젊은 네가 애를 낳아봤나 키워봤나. 뭘 안다고 우리 애를 지도하려고 하나. 애가 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죽겠다고 한다. 가만히 안 두겠다"고 했다.


[4] 일상적 폭력에 물든 학교(6.28)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고 놀려대면서 교실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일부 학생들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일부 교사들은 억압적 지도방식으로 학생들을 과도하게 체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로 찾아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폭행하기도 한다. 학생들 간 학내 폭력이 점점 과격해지는 것도 우려스러운 점이다. 우리 학교 문화 자체가 폭력에 지나치게 노출돼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전남 광양의 한 초등학교엔 학부모 8명이 학교장을 찾아와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50대 여성 교사가 상습적으로 학생을 때렸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숙제를 안 해오거나 수업태도가 좋지 않으면 대나무 매로 수시로 학생들을 때리고 머리를 쥐어박는 등 체벌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이 학교로 찾아와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자녀가 전하는 말만 듣고 흥분한 상태에서 교사를 찾아와 폭언을 퍼붓고 때리기까지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오전 충남 공주의 한 초등학교 A교사는 학부모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다. 6학년 학생 아버지가 4층부터 1층 교무실까지 A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내려오면서 수차례 얼굴을 때린 것이다. 이 학부모는 교무실 바닥에 A교사를 내동댕이치고 옆에서 말리는 두 교사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이 학부모는 며칠 전 A교사가 자신의 아들이 여학생을 괴롭히고 욕을 하는 것을 보고 엎드려뻗치기를 시키고 옆구리를 발로 세 차례 툭툭 찬 것에 화가 나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학생 간 폭력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울산의 한 중학교에서는 3학년 C군과 D군이 같은 학교 친구 E군을 교실 앞 복도와 옥상 계단 등지에서 10여분간 끌고 다니면서 폭행해 눈 주위에 금이 가고 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혔다. 이들은 전날 학교에 교복을 입고 오지 않아 E군을 시켜 급우의 교복을 훔쳐오도록 했는데 이 같은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자 보복 폭행을 한 것이다. 최근 초·중·고교에서는 힘센 학생들이 만만한 아이를 지목해 빵 심부름을 시키고 괴롭히는 일명 '빵셔틀'이 새로운 학교폭력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5·끝] 해법을 찾아서(6.29)

① 교내서 폭력쓰면 교사·학생·학부모 누구든 대가 치르게 하라

② 벌칙 매뉴얼 학교마다 학칙으로 만들자

③ 교장이 직접 문제 학생들 지도 앞장서야

④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어떤 경우든 금지

⑤ 문제 학생 방치하는 교사는 평가에 반영


  폭력, 성희롱, 무분별한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수업시간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상당수 초·중·고교의 '교실 붕괴'현상을 막으려면 학교가 문제 학생에 대한 분명한 처벌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와 함께 교사가 문제 학생들을 피하지 말고 '애정'이 담긴 교육을 꾸준히 하면 일부 학생의 막된 행동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① 교내 폭력은 반드시 대가 치르게

  초·중·고교 내 폭력은 학생이든 교사든 학부모든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사가 학생에게 억압적인 체벌을 하고, 학부모는 교사를 폭행하며, 학생은 또 다른 학생을 폭행하거나 교사에게 반항하는 악순환이 학교를 일상적 폭력에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나 학생이 폭력을 행사했을 때는 반드시 징계하고, 학내에서 폭력을 휘두른 학부모는 고발하도록 관련 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② 학교별 '벌칙 매뉴얼' 학칙으로 만들라

  학생을 때리는 직접 체벌을 삼가는 대신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간접 체벌(엎드려뻗쳐, 운동장 돌기, 팔굽혀펴기 등)과 반성문 쓰기,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 있기, 상·벌점제 같은 대체벌(代替罰)의 유형과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다. 학생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를 상황별로 밝힌 '벌칙 매뉴얼'을 학칙으로 만들어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③ 교장이 직접 문제 학생을 성찰실로 데리고 가라

  교장들이 '교실 붕괴'문제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학교에선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교장이나 교감에게 인계한 뒤 상담을 받게 하거나 학부모를 소환하도록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교장이 학생에게 직접 벌을 내릴 권한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교장이 직접 지도에 나서면 교사들도 확신을 갖고 문제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④ 수업 중 휴대전화 못 쓰게 하라

  수많은 교사가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이다. 일부 학교에선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선 적극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하다. '수업 중 휴대전화 소지 금지'나 '등교시 수거, 하교시 반환'을 학칙으로 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확실하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⑤ '교실 붕괴' 방치, 교사 평가에 반영해야

  지금처럼 학교 교실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은 이를 방치한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온다. 많은 교사가 수업 중에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피하거나 무시해서 오히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학생의 문제 행동을 방치해 지도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는 명백한 근거가 있는 교사에 대해선 평가에 반영하는 등 책임을 따질 필요가 있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