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가족에 대하여

죽장 2011. 7. 4. 10:18

[2011.7.4, 조선일보]

김태훈 국제부장의 글 일부을 퍼왔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답변인 듯 합니다.

 

중국 쓰촨 출신의 가난한 여성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일식당에서 하루 10시간씩 휴일 없이 일한다. 어느 날 고향에 있는 여동생이 컴퓨터를 장만했다며 이메일을 보낸다. 태평양 건너 동생과 광속(光速)으로 편지를 주고받게 된 언니는 어릴 적 한 지붕 아래 살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자매의 관계는 오래지 않아 파탄 나고 만다. 동생이 차를 사게 돈을 보내달라고 떼쓰면서부터다. 언니는 돈을 달라며 수시로 이메일을 보내는 동생에게 인간적인 환멸을 느낀다.

이 이야기는 올해 초 번역 출간된 중국 출신 미국 소설가 하진의 소설집 '멋진 추락'에 수록된 단편 '인터넷의 해악'에 나온다. 동생은 가족이라는 고리에 기대어 언니에게 돈을 요구한다. 하지만 매일 밤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퇴근하는 언니에 대한 가족으로서의 염려와 안타까움은 없다. 이 자매 사이에는 혈연(血緣)이라는 관계만 존재할 뿐, 그 관계를 이어주는 사랑과 정이라는 끈이 없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소설은 인터넷이 좁혀놓은 소통의 거리와 둘 사이에 놓인 태평양 가운데 어느 것이 자매 사이에 적당한 거리인지 묻는다. 인터넷과 태평양은 죽지 못해 붙어 있느니 떨어져 사는 게 나을 수 있는 가족관계의 역설(逆說)을 보여주는 장치들이다.

혈연 중심적 가족관(家族觀)이 초래할 수 있는 관계의 폭력성,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억압, 그로 인한 상처는 작가 하진이 최근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는 테마다. 하진뿐 아니라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도 가족의 가치를 묻거나 가족관계의 재점검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어떤 소설들은 아예 기존의 가족제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담는다. 여자들로만 구성된 가족을 만들거나, 피가 섞이지 않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대체가족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들이 출간되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2010년도 미국 인구 센서스는 가족제도에 이미 혁명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 중 남녀가 결혼해 만든 가구 비율은 21%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독신이거나 동거, 동성애 등이다. 이성(異性)과 결혼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전통적인 가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가족의 불화와 해체를 다루는 소설은 가족제도의 멸종 위기를 더이상 방치하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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