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고전(박재희교수)

낙엽(落葉)

죽장 2010. 12. 2. 13:34

 

가을은 깊어가고 어느덧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여름의 이파리는 이제 낙엽으로 변해 거리에 뒹굴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나 봅니다. 떨어진 낙엽을 보고 조선 초기 김시습은 이렇게 시를 읊었습니다.

 

落葉不可掃(낙엽불가소) 낙엽, 함부로 쓸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偏宜淸夜聞(편의청야문) 어느 청명한 밤, 낙엽 소리 듣기가 좋아서입니다.

風來聲慽慽(풍래성척척) 바람이 불어오면 낙엽은 우수수 소리 내고,

月上影紛紛(월상영분분) 달이 떠오르면 낙엽 그림자 아름답게 펄럭이기 때문입니다.

鼓窓驚客夢(고창경객몽) 낙엽은 창문을 두드려 나그네 단꿈을 깨우기도 하고,

疊砌沒苔紋(첩체몰태문) 낙엽이 섬돌에 쌓이면 섬돌에 낀 이끼도 안 보이지요.

帶雨情無奈(대우정무내) 아! 비에 젖은 낙엽 어찌할거나?

空山瘦十分(공산수십분) 저물어 가는 가을, 낙엽 떨어진 산은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낙엽을 쓸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너무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명한 어느 저녁 낙엽소리를 듣고, 달 빛에 비친 낙엽의 그림자는 내 눈을 즐겁게 합니다. 낙엽은 어느 나그네의 단 꿈을 깨우기도 하고, 섬돌에 낀 이끼를 가려주기도 합니다.

 

낙엽, 비록 화려했던 모습은 사라졌지만 여러모로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김시습의 이 시를 읽으면서 늙어간다는 것이 결코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실용과 효율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내자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생은 2모작이라고 합니다. 낙엽이 되어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할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젊은 날의 인생이 오로지 나와 가족을 위하여 매진한 인생이라면 나이 듦의 인생은 그동안 돌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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