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가 황제의 별장으로 만든 것이 북경에 있는 이화원입니다. 땅을 파서 곤명호를 만들고, 파낸 흙으로 만수산을 쌓았다고 합니다. 주인이 여자인지라 용마루가 없는 독특한 건축양식에 황제의 상징인 용이 아닌 봉황으로 장식이 되었습니다.
청나라 9대 황제 함풍제 문종의 후궁으로 있다가 비가 된 서태후는 남편의 뒤를 이어 6살의 아들 동치제 목종을 즉위시키면서 섭정을 시작하였답니다. 1874년 목종이 죽자 4살 된 여동생의 셋째 아들 광서제 덕종을 제11대 황제에 올려놓는 등 40년간 청나라 정치를 주물렀던 여걸이었습니다.
프랑스 배를 본 떠 대리석으로 만든 ‘석방’위에서 화려한 비단치마 펄럭이며 달맞이를 즐겼겠지요. 때마침 에디슨이 만든 전등불을 대낮처럼 밝혀놓고 천하를 주물렀던 여인의 모습이 이화원 곤명호에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만수산 팔각지붕 추녀 끝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권력의 달콤한 맛에 빠져버린 여인에게 있어 날이 저물면 어떻고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한들 무슨 상관이 있었겠습니까. 나이 어린 허수아비를 황제로 세워놓고 아첨하는 간신배들의 무리에 둘러 쌓여 누린 부귀와 영화는 진정으로 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었을까요. 서태후는 가고 없지만 그녀의 욕망이 만든 거대한 정원은 오늘까지 세인의 발길을 붙들어 놓지 않고 있습니다.
호수를 끼고 끝없이 이어진 780m의 길고 긴 복도를 거니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이화원의 낮 풍경이라면, 가로등 희미한 호수가에서 꽤재재한 표정의 인민들이 ‘한국돈 천원’이라고 외치며 내미는 가짜진주 목걸이가 중국의 저녁풍경입니다. 지금은 비록 곤명호에서 노젖는 뱃사공이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WTO의 가입과 함께 세계경제 무대에 진입한 중국은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무서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2008년 북경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고 나면 호수를 파고 산을 만든 여인 서태후의 욕망을 딛고 세계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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