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원고와 자료

인터넷인구 3,500만명

죽장 2008. 8. 19. 14:09
 

"정보화는 앞서가자" 인터넷 인구 3500만명

- 정보화 시대 개막 -



  국민 4 명 중 1명이 인터넷 이용자가 됐음을 보도한 2000년 3월 15일자 조선일보. 조선일보 DB"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1995년 3월 5일

조선일보가 내걸었던 이 구호는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현실화됐다. 1995년 말 36만 명이던 한국의 인터넷 이용 인구는 1997년 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1999년 말에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1999년 6월부터는 초고속 인터넷 사업이 시작됐다. 2008년 상반기까지 전체 인터넷 인구 3500만 명 가운데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무려 1506만 명이었다.


  휴대전화 역시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다. 유럽식(GSM) 기술이 세계 디지털 이동통신을 '평정'한 것처럼 보이던 1996년, 한국은 아직 생소하던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 개발에 몰두해 성공을 거뒀다. 당시 한 신문은 "서울 종로의 초등학교 한 반 40명 중에 20명은 삐삐를, 2~3명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조금 더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런 것쯤엔 전혀 놀라지 않을 상황이 전개됐다. 삼성전자가 판 휴대전화는 1996년 100만 대에서 2008년 상반기에만 9200만 대로 급증했다. 2008년 6월 현재 이동통신 가입자는 4498만 명으로, 대다수의 국민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놀라운 현실을 이뤘다.


  실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정보화였으며, 좀처럼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가장 잘 발휘된 분야이기도 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한국은 '제3의 물결'(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은 정보혁명) 흐름에서 더 이상 벤치마킹할 모델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피땀 어린 토대 위에 '정보화'의 탑을 쌓음으로써 21세기를 헤쳐 나갈 준비를 탄탄히 갖춘 셈이었다. 지식 생산과 유통에서의 민주화와 대중화도 함께 일어났다.


  하지만 정보화의 급성장으로 인한 양(量)과 질(質)의 불균형은 숱한 사회적 부작용을 낳았다. 인터넷 대중화 초창기의 'O양 비디오 사건'(1999)과 'B양 비디오 사건'(2000)은 인터넷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교육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1999년 9월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교사가 'O양 비디오' 감상문을 써 오라고 했다"며 진정서를 내는 일도 벌어졌다. 익명성의 뒤에 숨은 언어폭력과 선동, 문자메시지와 게임 중독, 자폐적 인간의 등장 같은 '정보화의 그림자'도 계속 생겨났다.


[조선일보, 2008.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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