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원고와 자료

행복은 어떻게 오는가

죽장 2008. 5. 1. 15:53
 [이인식의 멋진 과학]

행복은 어떻게 오는가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우리는 날마다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더 큰 감투, 더 넓은 집, 더 멋진 연인을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그 어느 것도 행복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다시 말해 행복은 개인이 노력만 한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1996년 미국 미네소타대의 데이비드 리켄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5월호에 행복과 유전의 관계를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리켄은 4000쌍의 어른 쌍둥이를 연구하여 사람마다 행복을 누리는 데 차이가 나는 까닭은 80%가 유전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말하자면 사람마다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다르게 갖고 태어나며, 이러한 선천적 요인이 행복을 좌우하므로 개인적인 노력으로 행복을 성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8년 영국 에딘버러대의 티머시 베이츠는 '심리과학' 3월호에 리켄처럼 유전자가 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성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베이츠는 973쌍의 어른 쌍둥이를 연구하여 유전자가 사람이 행복을 누릴 때 50%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이츠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행복과 개인의 성격이 깊은 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행복을 비슷하게 느끼는 쌍둥이들은 성격의 여러 특성, 예컨대 외향성이나 성실성에서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  


미국 호프칼리지의 행복 전문가인 데이비드 마이어스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된 성격을 갖고 있다. 첫째, 행복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윤리적이며, 지적이고 편견이 적으며, 남과 잘 어울리고 건강하다고 스스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둘째, 행복한 사람들은 낙천적이다. 삶을 적극적으로 영위하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항상 따뜻하며 자주 미소 짓고, 남을 헐뜯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셋째, 행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향적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삶을 관조하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쉽기 때문에 외향성이 강한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도리어 사교적이고 개방적인 사람들이 짝을 빨리 찾고 좋은 친구가 많으며 직장에서 인기가 높아 행복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


베이츠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의 50%는 성격에 의해 미리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행복의 나머지 50%는 개인이 각자 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은 행복의 실체를 찾는 새로운 심리학을 긍정 심리학이라고 명명했다. 이름 그대로 마음의 밝은 면을 규명하여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 행복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를 연구한다.


  2002년 9월 셀리그먼이 '진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을 펴낸 이후 2005년 12월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행복 가설'(The Happiness Hypothesis)을, 2006년 5월 하버드대의 심리학자인 대니얼 길버트는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Stumbling on Happiness)를 출간했다. 이들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미래의 목표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완전히 빠져있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미국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런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불렀다. 1997년 펴낸 '몰입의 발견'(Finding Flow)에서 칙센트미하이는 "명확한 목표가 주어져 있고, 활동의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과제의 난이도와 실력이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누구나 어떤 활동에서도 몰입을 맛보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적었다.

[2008.4.25 조선일보 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