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나노기술이 세상을 바꾼다
- 美 테크놀로지 리뷰誌 선정
■ 책의 개념을 바꾸다
유사 이래 책은 곧 종이로 만든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종이가 아닌 전자책이 최근 상용화되고 있어 책의 개념이 바뀔 날이 멀지 않았다. 예전에도 전자책이 있었지만 대개는 딱딱한 플라스틱 외형이었다. 크기도 손바닥만해서 당연히 글자도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덜란드 필립스사로부터 2006년 분사한 폴리머비전(PolymerVision)은 지난해 휘어지는 전자책을 출시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분사한 벤처기업 플라스틱로직(PlasticLogic)사도 올해 휘어지는 전자책을 출시할 예정이다.
플라스틱로직은 기존의 휘어지는 전자책 제조 공정과 다른 방식을 택했다. 전자회로를 그리는 공정에서 리소그래피, 즉 빛으로 기판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반도체 제조에 흔히 쓰는 공법이다) 대신, 전기가 통하는 물질이 포함된 잉크로 인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을 택하면 원가를 낮추면서 대량 생산도 쉬워진다.
이 전자책은 평소엔 둘둘 말고 있다가 읽을 때만 펼칠 수 있다. 덕분에 지금처럼 손바닥만한 크기의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 크기로 구현할 수 있다. 기존의 전자책보다 훨씬 읽기 편한 것은 물론이다. 또 전자책은 저장용량이 크고, 문자뿐 아니라 소리와 영상까지 표현할 수 있다.
■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은 사물에 부딪혔다가 반사되는 빛으로 영상을 인식한다. 그렇다면 빛을 반사시키지 않는 물질이 있다면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물론 반사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투명한 물질을 만들 수 없다. 빛이 반사되지 않고 100% 흡수한다면 물질은 검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아예 보이지 않게 하려면 빛을 반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빛이 자유롭게 지나가게 해야 한다. 유리가 투명한 것도 우리가 보는 쪽에서 유리로 가는 빛을 거의 반사시키지 않는 동시에 반대편에서 들어 오는 빛도 그대로 투과시키기 때문이다.
듀크 대학의 스미스(Smith) 교수팀은 같은 방법으로 물질을 투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만 빛은 우리가 보는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마이크로파(波)를 사용했다. 만약 가시광선에서도 이 같은 일이 성공한다면 만화에 나오는 투명 망토처럼 우리 몸을 안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스미스 교수는 입자를 향해 직진하는 마이크로파의 각도를 지속적으로 조금씩 틀어 입자와 부딪히지 않고 반대편으로 가게 했다. 반대편에서 오는 마이크로파 역시 같은 방법으로 지나가게 했다. 마치 한 가운데 원형 기둥이 있는 방을 사람이 방향을 조금씩 틀어 돌아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마이크로파는 입자와 부딪히지 않게 된다. 즉 입자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투명 실험은 아직은 입자 단위에서만 성공한 상태다. 사람을 통째로 안 보이게 하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너지 등 다른 분야에 이 기술이 응용될 수 있다. 스미스 교수는 "이번 실험을 태양전지에 적용하면 들어 온 빛을 내보내지 않고 100% 전기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기존의 태양전지는 정면으로 들어오는 빛에 효과적이지만 스미스 교수의 장치는 각도에 상관이 없어 효율이 증대된다.
▲ 물방울(파란색 공)이 흐트러지지 않고 공 형태를 연잎에서 유지하고 있다. 연잎의 미세한 돌기 사이의 공기가 물방울이 터지지 않도록 해준다. 위쪽의 흑백 사진은 연꽃잎의 표면을 확대한 모습이며 검은 막대의 길이는 5㎛(마이크로미터ㆍ1㎛는 100만분의 1m)이다. / 사이언스 제공
■ 연잎을 모방한 프라이팬
나노 세계에서는 기름 방울 하나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이 가능하다. MIT의 맥킨리(McKinley) 교수는 연잎을 모방해 기름이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을 만들었고, 원리를 규명해 작년 12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현미경으로 보면 기름 방울은 프라이팬 표면에 닿자마자 옆으로 쭉 퍼진다. 물이나 기름에는 공 형태를 유지하게 하는 표면 장력이 작용하는데, 기름 방울이 프라이팬 표면에 닿으면서 표면 장력이 깨지는 것이다.
그러나 맥킨리 교수는 연잎을 모방해 프라이팬의 표면 구조에 변화를 줬다. 연잎을 보면 미세한 돌기들이 나있고 사이사이에 공기 방울이 들어가 있어 물방울이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그냥 굴러 떨어지게 된다. 이때 먼지도 함께 끌어간다. 연잎이 항상 깨끗한 이유다.
연구팀은 프라이팬 표면에 연잎처럼 돌기 구조를 만들어 사이사이에 공기가 끼어들게 했다. 이렇게 하면 프라이팬 표면이 기름 방울과 직접 접촉하는 면적이 크게 줄어든다. 또 공기 분자는 기름 방울을 떠받쳐 프라이팬 표면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준다. 결국 기름이 프라이팬에 눌어붙지 않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물방울이 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맥킨리 교수팀은 프라이팬 표면에 공기 방울을 집어넣는 정도를 제어해서 물 또한 옆으로 퍼지지 않게 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하면 연잎처럼 '자가세척'하는 모니터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공기 중의 수분이 모니터에 방울 상태로 붙었다가 먼지를 끌고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력은 적게 속도는 빠르게
지난 40여 년간 반도체 소자들은 매년 집적도가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족시키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조만간 무어의 법칙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대학 재료공학과의 아가왈(Agarwal) 교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반도체를 개발,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 중이다.
아가왈 교수의 반도체는 전류 대신 전기장을 제어한다. 전류는 입자인 전자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고, 전기장은 물결처럼 파동을 이루며 이동하는 것이다.
기존의 반도체는 전류를 통과시켰다 막았다 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반면 아가왈 교수의 반도체는 전기장이 이를 대신한다. 전기장은 전자보다 빨리 움직인다. 따라서 반도체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아가왈 교수는 안티몬·게르마늄·텔루르로 구성된 금속 막대를 만들었다. 직경은 30~50 ㎚(나노미터)에 길이는 10㎛(마이크로 미터·1 ㎛는 100만분의 1m)이다. 금속막대는 충격을 받으면 분자 구조가 일정한 결정체에서 비(非)결정체로 변한다. 결정체는 전기장을 통과시키고 비결정체는 통과시키지 않는다.
작년 가을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아가왈 교수의 반도체는 현재의 플래시메모리보다 10분의 1의 전력을 쓰면서 속도는 1000배 빨랐다. 문제는 금속 막대의 정렬이다. 금속 막대를 원하는 곳에 정렬 시킬 수 있어야 대량 양산이 가능해진다.
▲ 바이러스 섬유가 종류 에 따라 붉거나 푸른 빛 을 내고 있다. / 테크놀로지리뷰 제공
■전기를 만드는 바이러스
MIT 생명공학 및 재료과학부의 안젤라 벨처(Belcher) 교수는 바이러스로 전기를 만드는 섬유를 만들었다. 바이러스 섬유에 자외선을 쪼이면 빛을 낸다. 빛 에너지는 바로 전기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필요에 따라 배터리처럼 전기 에너지를 저장할 수도 있다.
벨처의 바이러스 섬유는 대략 3단계로 완성된다. 첫 단계에서는 바이러스를 유전공학으로 조작해 표면에 특정 아미노산(단백질 구성성분)을 많이 만들게 한다. 아미노산은 자외선을 받고 빛을 내는 수 나노미터의 반도체 물질에 바이러스가 달라붙게 해준다. 두 번째 단계는 수백 개의 반도체 물질을 바이러스에 붙이는 작업이다.
최종 단계는 실을 뽑아내는 과정이다. 바이러스는 특정 조건하에서 일정한 형태로 정렬한다. 반도체 물질을 바이러스에 붙인 것도 이 같은 특징을 이용해 규칙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바이러스-반도체 결합체에 압력을 가하면 섬유 형태로 변한다.
바이러스 섬유는 각종 휴대용 전원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휴대용 전자제품에 맞게 원하는 모양대로 천을 짜면 된다. 아니면 옷 전체를 바이러스 섬유로 만들어도 된다. 전원 공급이 힘든 전투 현장에서 특히 유용하다. 뙤약볕 아래 전투를 수행하면서 별도의 배터리 없이 군복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전기로 각종 전자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2008.3.1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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