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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의 '토로이 목마'를 만들자

죽장 2008. 2. 2. 21:20
 

기업 경영의 '트로이 목마'를 만들자

 


   장대련·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근 위클리비즈가 인터뷰한 미국 컬럼비아대 번트 슈미트(Schmitt) 교수는 경영에서 역발상(逆發想)의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한국판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1월26일자 C1,5면 참조)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동안 외국 사람들이 경악할 만큼, 상상을 초월한 많은 '트로이 목마'들이 만들어져 왔다. 예컨대 한강에 있는 '잠수교'는 한국을 빼고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다리이다. 일반 다리에 비하여 공사 비용을 최소로 절감한 매우 실용적인 다리인데, 일년 중 장마철의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사용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일부 구간은 유람선까지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 시공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도 세계 해군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군함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백남준 선생은 '비디오 아트' 장르를 창시하면서 디지털과 아날로그, 예술과 기술, 그리고 동양문화와 서양문화 등과 같은 이색적 결합을 미술 세계에 많이 적용하였다. 또한 한국 영화들에 대한 세계적인 인기는 아시아는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소재와 표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은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탁월한 사고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슈미트 교수는 다섯 가지 아이디어 발굴 방식을 제안했는데, 이를 응용한 사례는 우리 기업에서도 잘 찾아볼 수 있다.

  슈미트 교수가 제안한 첫 번째 아이디어 발굴 방식은 기업의 본업과 전혀 무관한 사업을 연결시켜 보는 시도이다. 그 좋은 예는 김치 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가 프렌치 스타일의 카페인 '비스트로 디'를 개업한 것이다. 한국 대표 음식 김치를 보관하는 냉장고로 유명한 회사가 프랑스 카페를 차린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음식의 생명은 신선한 재료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발상은 생각만큼 빗나간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아이디어 발굴 방식은 동종 업종보다 이종(異種) 업종에서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아시아나 골프장이 좋은 예이다. 아시아나가 명문 골프장으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항공업에서 그러한 서비스 운영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금호아시아나는 얼마 전에 대우건설을 인수하였는데,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이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건설업에서도 서비스 경영의 여러 노하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 번째 아이디어 발굴 방식은 인도 힌두교에서 말하는 '성우'(聖牛· sacred cow)를 마음속에서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성우'는 기업이나 조직이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경영 신조나 조직 통념 또는 관행을 말한다. 성우를 버린 좋은 예가 히딩크 감독이다. 그는 연공 서열을 비롯한 한국 축구의 많은 오래된 통념을 과감히 타파하여 한국 축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4강 신화를 낳았다. 또 새 정부는 한국의 대학 개혁을 위해 '3불 정책'(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 등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제한 없이 모든 조건을 유연하게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 역시 세 번째 아이디어 발굴 방식과 유사한 선택이다.

  네 번째 아이디어 발굴방식은 경영의 시간적 경계를 벗어나라는 것이다. 현안을 검토할 때 과거,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시간적 경계를 벗어난 좋은 예는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보령그룹의 경우이다. 약국으로 시작한 보령그룹은 100년 기업의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엠블럼을 찾던 중 창업자인 김승호 회장이 50년 전에 탔던 자전거를 발견했다. 그 자전거는 김 회장이 창업 당시 손님이 찾는 약을 구하기 위해 온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녔던 자전거다. 보령은 초창기 힘겨웠던 시절의 헝그리 정신을 되살려 미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미에서 창업자의 자전거를 상징물로 채택했다.

  마지막으로 슈미트 교수가 제안하는 아이디어 발굴 방식은 기존 전략에 대한 '옷 벗기기(stripping)'이다. 기업 전략을 하나의 복장으로 비유한다면 기업은 시간이 흐르면서 옷을 많이 입게 된다. 그 중 필요한 옷이 있는 반면, 큰 필요가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입는 옷이 있을 수 있다. '옷 벗기기'는 기업이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필요 없는 옷을 과감히 벗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좋은 사례가 LG 패션이다. 이 회사는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6년 독립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전문 패션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탄탄한 브랜드만을 유지하고 나머지 브랜드를 과감히 없앴다.


  물론 기업 차원에서 결코 벗어서 안 되는 옷은 그 기업의 핵심 역량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핵심 역량의 응용 방식을 다양하게 구상함으로써 과거에 생각하지 못한 성장 판로를 발굴할 수 있다. 이는 패션에서 기존 옷을 가지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믹스 앤 매치(mix and match) 개념과 상통한 것이다.


  한국에도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가는 사람과 기업이 얼마든지 있다. 모두 틀에 박힌 사고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트로이 목마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시도조차 않는 사람과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다 함께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보자.

[조선일보 2008.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