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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직업윤리 그리고 직업교육

죽장 2014. 4. 23. 11:35

[2014.4.23, 영남일보 시론]

세월호, 직업윤리 그리고 직업교육

- 백승대 영남대 교수(사회학과) -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는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한국 사회가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모습이다. 이번 사고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사고였다면 그래도 이렇게 망연자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인재의 전형이었기 때문에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승무원에 대한 분노,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 우리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는 그 원인부터 사고에 대한 초기 대응, 사고 수습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문제덩어리였다. 그야말로 한국이 아직도 후진사회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위기상황에 대한 선장과 승무원의 대응은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승객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부터 먼저 배에서 탈출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직업윤리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허탈감을 주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직업윤리를 망각한 각종 비리와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사건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주개발 허재호 전 회장에 대한 광주지법의 황제노역 판결이 그렇고, 국민은행 등 국내 유수은행들의 도쿄지점에서 일어난 대출횡령이 그렇다. 서울의 유명 성형외과 병원에서 자행되었던 그림자 의사에 의한 성형수술도 직업윤리를 망각한 대표적인 사례다.

직업윤리, 특히 국가자격증이나 면허증이 주어지는 전문직의 경우에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일정한 자격증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전문 능력을 인정해 자기 분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격증과 그에 따른 권한은 곧 고객의 신뢰에 맞춰 행동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만약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대를 배반한다면 국가자격증이나 면허증 제도는 그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번에 세월호를 몰았던 항해사나 항해 전체를 책임진 선장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일정한 자격증과 권한을 인정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고객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위기상황을 조장했을 뿐 아니라 고객들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들은 자격증과 권한에 따라다니는 직업윤리를 팽개치고 사회적 신뢰를 배신했다.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도 직업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직업교육은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직업적 기능, 직능 교육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흔히 직업교육 현장에서는 직능교육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직업윤리 교육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맡은 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직능 교육은 중요하다. 그런데 엄정한 직업윤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숙련된 직능은 사리를 추구하는 데 활용되거나 사회적으로 해악을 낳게 마련이다. 따라서 직업윤리 교육은 직업교육의 한 축으로서 엄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직업윤리 교육은 무슨 헌장을 주지시키고 외우게 하는 것으로 족한 교육이 아니다. 윤리란 덕목은 개인의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고 말로 그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윤리는 필요한 상황에서 행동으로 구현돼 나타나야 한다. 이런 까닭에 직업윤리 교육은 이론 교육으로 결코 족하지 않다. 직업윤리가 직업 활동을 하는 개개인에게 내면화되고 체화돼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직업윤리 교육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직업별로 직업윤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동기부여의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덧붙여 각 직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상황을 설정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깊이 성찰하게 함으로써 직업윤리를 몸으로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삼가 이번 사고의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