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15, 조선일보 만물상]
월금쟁이 퇴직 후
우재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이사장은 두루 인정받는 '은퇴 전문가'였다. 번듯한 금융사에서 일하며 한 해 150차례 넘게 은퇴자를 위한 강연을 하다 지난해 퇴직했다. '은퇴 후'를 가르치던 그가 막상 은퇴해보니 일정 챙기는 것부터 막막했다. 비서와 운전기사가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이다. 몇십 년 만에 버스를 타고 다녔더니 석 달 만에 몸무게 2kg이 빠졌다. 그는 "미리 준비하라고 외치다 막상 내가 퇴직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 했다.
▶월급쟁이들은 퇴직하고 대개 한두 달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그러고 나서 갈 길을 찾는다. 외국계 회사 간부가 얼마 전 은퇴해 빵집 창업 강좌를 들었다. 그는 "목숨 걸고 창업하라"는 강사 말에 주눅 들어 다시 월급쟁이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준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시간만 보낸 셈이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며 창업을 그저 쉽게만 여겼다 정신 번쩍 들었다.
▶월급쟁이들은 회사만 왔다갔다하느라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버스 노선은 고사하고 지하철 노선이 너무 복잡해 한눈팔다 반대 방향으로 타기 일쑤다. 심하게는 "전역하는 직업군인 돈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도 있었다. 오랜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얘기다. 월급쟁이도 그리 다르지 않다. 부장이니 이사니 하는 직함 떼고 마주 선 세상은 정글이나 다름없다. 사람 쉽게 믿다 낭패하기 일쑤다.
▶삼성전자가 퇴직 앞둔 임직원에게 '유익한 생활 정보'라는 안내 책자를 나눠줬다고 한다. 100여 쪽에 통장 만들고 예금 인출하는 법부터 시내버스 타는 방법까지 시시콜콜 싣고 있다. 지하철에선 '목적지로 가는 전동차를 확인하고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승차한다'고 썼다. 여간 자상한 게 아니지만 정작 집에서 발 헛디디지 않는 요령이 빠졌다.
▶월급쟁이 남편들은 흔히 아내와 속 터놓고 얘기한 지 오래됐다. 은퇴 후 얼마 안 가 아내를 동반자로 믿었던 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조사에서 남편 56%는 은퇴 후 하루 절반 이상을 아내와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내들은 47%가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 4~5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나마 아내들이 후하게 대답했다. '제2의 인생'은 은퇴 자금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를
넘어 집 안과 밖에서 어떻게 살지 도상(圖上) 연습을 해야 한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일벌레로 살다 가족에게까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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