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人生 마지막 10년, 우리를 찾아온 거대한 질문

죽장 2013. 11. 20. 10:35

[2013.11.20, 조선일보]

人生 마지막 10년, 우리를 찾아온 거대한 질문

- 신경숙 -

 

시골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어떤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지난봄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되신 분인데 119에 전화를 걸어 소방차가 왔다 갔다고 했다. 놀라서 "불이 났어요?" 물었다가 "하루해가 저물어도 말할 사람이 없으니 119에 전화를 한 모양"이란 대답을 들었다. 소방대원이 짜장면 시켜 할머니하고 마루에 앉아 먹고 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서울 분에게 했더니 "저희 어머니도 114에 전화해 말씀하세요" 한다. 2013년 서울에서나 시골에서나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풍경 중 하나다.

몇해 전 어느 날 아침 프랑스 보농이라는 시골마을에서 83세의 앙드레 고르와 82세의 아내 도린이 침상에 나란히 누워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두 사람이 택한 죽음의 방식은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자신들을 화장시켜 20여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가꾸며 살았던 마당에 묻어달라는 유서가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사르트르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평을 들은 앙드레 고르는 일생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생태주의를 심층분석해 온 철학자이며 언론인이었다. 지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던 때 인생의 동지로 지내온 아내 도린이 척추 수술로 깊은 병에 걸리자 그는 모든 사회 활동을 접고 파리 교외로 나가 아내와 투병 생활을 함께했다. 동반자살 일 년 전 고르는 도린을 향한 '어느 사랑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D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편지 속 한 구절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편지 속 두 사람의 인생을 읽는 동안 평생 사랑과 신뢰와 감사 그리고 서로를 위한 헌신을 다할 수 있었던 그들로 인해 인간이라는 사실에 깊은 위로를 받았던 독서의 경험이 생생하다.

올 초 마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라는 영화를 봤다. 시작 부분의, 우아함과 품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노부부의 일상이 슬며시 미소짓게 했다. 음악회를 다녀온 나이 든 남편이 늙은 아내에게 "오늘 밤 당신 참 예쁘다고 말했던가?"라고 할 때는 뒤에 휘몰아쳐 올 거대한 고통들을 짐작하면서도 따뜻했다. 자존심 강한 늙은 아내가 병마에 휘둘리며 서서히 망가져 가는 것을 늙은 남편은 혼자 감당했다. 아내가 그걸 원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안타까우면서 도 아내의 마지막을 지키며 함께 무너져 가는 그를 바라보는 슬픔은 묘한 안도감을 동반했다. 그래서 늙은 남편이 병마로 인해 이제는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내몰린 늙은 아내의 숨을 베개로 눌러 막을 때는 내가 그 늙은 남편인 것처럼 보는 마음이 외롭고 고통스러워 흐릿해진 눈으로 극장의 불이 켜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이들이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지킨 사랑은 고귀한 것들이다. 한국의 시골마을에서 119에 전화를 걸고 있는 할머니의 삶도 아니고, 죽음 앞에 섰을 때 두려움과 책임, 외로움과 아득함으로 점철되기 마련인 평범한 사람들의 마지막 시간이라고도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들 인생의 마지막 선택이 동반자살과 안락사였다는 것이 내겐 더욱 암담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는 이제 동서양을 막론한 인류의 거대한 질문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