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산사일등(山寺一燈)

죽장 2013. 11. 13. 10:13

산사일등(山寺一燈)

- 정민(한양대 교수) -

 

퇴계 선생이 비봉산(飛峰山) 월란암(月瀾菴)의 승려 응관(應寬)에게 써준 시다. "소년 시절 산사의 즐거움 가장 아끼느니, 푸른 창 깊은 곳에 등불 하나 밝았었지. 평생의 허다한 그 모든 사업이 이 한 등불 아래에서 발원하여 나왔다네.(最愛少年山寺樂, 碧窓深處一燈明. 平生許多事業盡, 自此一燈下發源.)" 삼동(三冬)의 산사에 푸른 등불 하나가 켜져 있고 창밖에는 계곡에서 몰려오는 바람 소리뿐이다. 이따금 제 무게를 못 견딘 고드름이 툭 소리를 내며 처마 밑으로 떨어진다. 소년은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꼿꼿이 등을 곧추세워 낭랑한 소리로 경전을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산사에서 삼동 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면 여드름투성이 소년의 가슴속에 뜨겁고 듬직한 생각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곤 했다.

집을 떠나 산사에서 한겨울을 나는 공부는 일종의 집중 학습이었다. 퇴계는 자식을 훈계하는 편지에서도 "집에 있으면 늘어져서 공부를 더욱 폐하게 된다. 뜻이 독실한 벗과 함께 빨리 책상자를 지고 절로 올라가 부지런히 애써 독서하거라. 지금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한번 가면 뒤쫓기가 어려운 법이니라(在家悠悠, 尤爲廢學. 須速與篤志之友, 負笈上寺, 勤苦讀書. 今不勤做, 隙駟光陰, 一去難追.)"라고 말해 산사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권두경(權斗經·1654~1725)도 승방(僧房)으로 공부하러 들어가는 자질(子姪)들에게 이 뜻으로 시 2수를 써 주었다. "소년 시절 산사에 등불 하나 깊었으니, 도산 노인 면학하던 그 마음을 기억하라. 이룸 없이 나는 늙어 늦은 후회뿐이라, 헛되이 좋은 시절 푸른 살쩍 내던졌네.(少年山寺一燈深, 記取陶翁勉學心. 老我無成空晩悔, 虛抛靑鬢好光陰.) 승방에 나란한 책상 골짝은 깊었으니, 책 속의 공부 일정 맘 다잡기 딱 좋아라. 늙마의 책 읽기는 새는 그릇 한가지라, 청춘 시절 진중하게 시간을 아껴 쓰라.(僧房聯榻洞天深, 卷裏工程好攝心. 遲暮看書如漏器, 靑春珍重惜分陰.)" 청춘의 공부는 보석같이 빛난다. 눈빛은 맑고 머리는 얼음같이 찬데 가슴은 뜨겁다. 내일이 수능이다. 그간 갈고 닦은 공부가 반짝반짝 빛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