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9.6, 조선일보]
낫 놓고 기역자, 낫이 뭔데요?
- 김한수, 대중문화부장 -
지난 주말 대학생이 된 아들과 함께 시골에 벌초를 다녀왔다. 며칠 후 문득 궁금해졌다. "너, 이번 말고 실제 낫을 본 적 있니?" "네, 지난번에 벌초 따라갔을 때요." 아들 녀석이 이야기한 '지난번'은 초등학생 시절, 즉 7~8년 전 일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녀석이 20년 동안 실제로 낫을 본 게 두 번밖에 안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로 '낫 놓고 기역자 모른다'는 속담은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기역자 놓고 낫을 모르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 밖에도 사망(?) 직전의 속담은 여럿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요즘 청소년들도 이들 속담의 뜻은 대충 안다. 등잔, 홍두깨, 부뚜막을 직접 보고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국어책에선 배웠고, 대략 어떤 것인지 짐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 뜻을 '여럿이 뜻을 모으면 못할 게 없다'로 아는 경우처럼 웃지 못할 오해까지 생긴다. 이렇게 빛의 속도로 변해온 한국 사회를 가리켜 한 독일 철학자는 90년대 중반 "농촌에서 자란 기성세대와 계란과 통닭을 먹으면서도 실제 닭을 본 적이 없는 도시 세대가 공존하는 나라"라고 표현한 바 있다.
물질적 변화와 더불어 정신적 변화, 세대 차는 더욱 극심해졌다. 특히 지난 세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세대 차는 질적으로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근대 이전엔 항상 연장자가 연소자보다, 윗세대가 아랫세대보다 지식이 많고 지혜로웠다. 언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 주고, 수확해야 하는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손자에게 가르쳐줬다. 상처가 나고, 급체했을 땐 어떤 응급 처방을 해야 할지 어른들은 다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어른께 여쭙고 말씀을 들으면 됐다. 요컨대 지식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사회로 이동하면서 이 지식의 흐름이 역류(逆流)하기 시작했다. 근대적 고등교육 받은 자식이 농사짓는 아버지보다 지혜롭지 못할진 몰라도 '아는 것'은 많아졌다. 디지털혁명 이후로는 현기증이 날 지경. '낫도, 기역자도 모르는' 꼬마들이 처음 보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능숙히 '논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에이, 그것도 몰라요?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이런 차이는 때론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차별로, 때론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본 것처럼 세대 간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은 가족, 이해, 그리고 사랑에 있다는 것을 벌초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아들에게 낫질하는 법을 알려주는 어른들, 서툴지만 땀 흘리며 풀을 베고 나르는 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10여일 후면 추석이다. 이번 추석엔 자신의 말을 하기보단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정성껏 차린 차례 음식을 함께 들고 어른들은 "버릇없다"고만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SNS 이용하는 법도 배워보고, 아이들은 "퀴퀴하다"고만 하지 말고 어른들의 삶의 지혜가 깃든 말씀을 경청한다면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는 즐거운 명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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