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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다리, IMF, 원전

죽장 2013. 9. 2. 11:03

[2013.9.2, 조선일보 조용헌살롱]

한강다리, IMF, 원전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가! 역사에서 같은 오류가 반복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린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한양을 사수(死守)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백성이야 죽든지 말든지 자기만 살겠다고 새벽에 한양을 버리고 피란을 갔다. 왕이 한양을 떠났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백성들은 궁궐에 불을 질러 버렸다. 한양 민초들의 분노가 컸던 배경에는 왕의 사전 통지가 없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중국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이 발생했다. 반란 군대가 도성인 장안성을 향해 돌격해오자, 당 현종은 도성을 떠나기 3일 전에 백성들에게 '나는 떠난다. 너희도 떠나라'는 통지를 했다. 국왕이라면 현종 정도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선조는 자기만 살겠다고 허둥지둥 한양을 버렸다.

6·25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한강 다리 폭파 사건이다. 인민군에게 서울이 곧 함락되는 상황인데도 라디오에서는 '한강 다리는 폭파하지 않는다. 걱정 마라'고 방송했다. 그러고는 다리를 끊었다. 이 말을 믿었던 서울 사람들은 피란을 미처 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서울에 고립되어 버렸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상황에서 상황을 오판하도록 거짓말을 해댄 것이다. 이 거짓말에 속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을 했는가!

IMF 때도 그랬다. '문제없다. 걱정 말라'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 과연 문제가 없었는가? 이번에 원전(原電) 문제를 보니까 이런 역사의 거짓말이 생각난다. '원전은 확실히 안전하다'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홍보를 해댔던가? 일본처럼 천재지변에 따른 문제가 아니고, 업자들이 가짜 부품을 끼워서 생긴 문제라는 데에 분노가 치민다. 자기 잇속 챙기느라고 나라가 망하든지 말든지이다. 대정전(블랙아웃)이 되면 냉장고 음식은 썩어 나갈 것이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인터넷은 먹통이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전기에너지는 나라의 심장이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 정치 지형도가 바뀔 수 있다. 찻물을 끓이려고 커피 포트 전기 스위치를 켤 때마다 '전기 아껴야 하는데' 하는 부담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