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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최강자' 노키아, 스마트폰 대응 늦어 3년 만에 급추락

죽장 2013. 9. 4. 12:11

[2013.9.4, 조선일보]

'휴대폰 최강자' 노키아, 스마트폰 대응 늦어 3년 만에 급추락

   

- 1865년 펄프공장서 시작, 1992년 제지 등 사업 정리하고 통신에 집중… 모토로라 제쳐 -

- 2007년 애플 아이폰 등장에도 스마트폰 OS 노하우 없어 흐름 따라가지 못해 -

- 파트너로 MS 선택, 결국 인수돼 -

 

노키아는 1865년 핀란드 서남부 노키안비르타 강가에 세워진 목재 펄프 공장에서 출발했다. '노키아' 회사명은 강 이름에서 왔다.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1970년대에 계열사 20여개를 거느린 재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구소련이 몰락하면서 노키아 경영도 악화됐다. 1988년에는 카리 카이라모 회장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휘청거리던 노키아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요르마 올릴라(Ollila) 명예회장이다. 1992년 회장으로 취임할 때 42세에 불과했던 그는 그때까지 노키아의 주력이었던 제지, 펄프, 고무, 타이어 등의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통신 부문에 집중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결과 노키아는 1998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외신들은 문어발 재벌 기업을 세계 최고 휴대전화 업체로 탈바꿈시킨 올릴라 회장을 '유대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모세'에 비유했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인수한다고 3일 밝혔다. 이로써 MS는 애플처럼 스마트폰 운영체제(OS)와 함께 단말기 하드웨어 제조 능력도 갖추게 됐다. /로이터 2006년 올릴라 회장의 퇴임 이후 노키아는 다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세계 1위 자리에 안주했던 노키아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올릴라 회장은 지난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노키아의 대응이 너무 느렸다"며 "특히 스마트폰 운영 체제(OS)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다"고 했다. 최근까지 이어진 노키아의 실적 악화가 스마트폰 시대로 변화하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본 것이다.

 

노키아의 스마트폰 운영 체제 '심비안'은 아이폰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키아는 다른 회사와 함께 OS를 개발하는 전략을 세웠다. 스마트폰 시장이 안드로이드를 앞세운 구글과 애플의 양대 진영으로 이미 나뉜 상황에서 노키아가 선택한 파트너가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MS와 노키아의 협력을 주도했던 MS의 스티븐 엘롭(Elop)은 2010년 10월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노키아 창업 이후 첫 외국인 CEO다. 엘롭이 노키아로 옮기자 일각에서는 "엘롭은 MS가 노키아 인수를 위해 심어 놓은 '트로이의 목마'"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2011년 2월 노키아와 MS는 전략적 제휴를 선언했다. 엘롭은 "심비안을 버리고 MS의 운영 체제를 주력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엘롭이 이끄는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추락은 점점 빨라졌다. 2008년 세계시장에서 스마트폰 점유율 40.1%, 휴대전화 전체 점유율 39.8%를 차지했던 노키아는 2012년 1분기 세계 휴대전화 판매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 내줬다. 1998년 1등 자리에 오른 지 14년 만이다. 올해 1분기에는 안방인 핀란드 시장의 휴대전화 판매량도 삼성에 밀렸다. '노키아 매각설'도 계속해서 나왔다. 중국 휴대전화 업체 화웨이 등이 인수자 후보로 거론됐다. 결국 노키아는 MS에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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