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3, 조선일보]
지도자의 知人之鑑
- 조용헌 -
지도자의 유형에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이다. 만 가지 일을 모두 직접 챙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만기친람'형 지도자는 2인자를 싫어한다. 2인자가 딴 주머니를 차거나 또는 2인자에게 배신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일일이 모든 일을 깨알같이 꼼꼼하게 직접 검토하고 결재하는 방식을 택한다.
또 하나의 유형은 '인사만사(人事萬事)'형이다. 아랫사람을 제대로 뽑아 놓으면 만사는 제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스타일이다. 사무형 지도자는 만기친람형으로 기울고, 전투형 지도자는 인사만사형으로 기운다. 전투를 하다 보면 믿음직한 부하가 반드시 필요하고, 지도자가 아랫사람을 믿어 주는 만큼 총알이 왔다 갔다 하는 전투에서 목숨을 내놓고 충성을 바치기 때문이다. 믿지 않으면 목숨도 안 바친다.
동양의 제왕학에서는 후자인 '인사만사'형 지도자를 모델로 여겼다. 공자의 어록을 정리한 '논어'의 핵심이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인지감'(知人之鑑·사람을 보는 능력)에 있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논어로 논어를 풀다'). 그렇다고 한다면 '논어'는 수신서(修身書)보다는 제왕학 교과서라는 부분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 '논어'에 나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의 지(知)는 지식이 아니다. 사람을 보는 안목, 즉 지인지감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이 원래부터 사람을 제대로 보는 능력이 있으면 생이지지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배신당하고 곤욕을 겪어본 뒤에 사람 보는 안목이 배양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3가지 액체를 많이 흘려보았을수록 비례해서 '지인지감'이 향상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3가지 액체는 피, 땀, 눈물이다. 이거 안 흘려 본 재벌 2·3세들은 대개 지인지감이 없다. 고생해서 밑바닥에 떨어져 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보지 못한다.
공자는 지인지감을 배양하기 위해서 '성기사(省其私)'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대개 여행, 도박, 음주를 같이 해 보면 그 사람의 바탕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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