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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이탑은 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나

죽장 2013. 7. 3. 10:46

[2013.7.1 영남일보]

오누이탑은 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나

- 장사로 태어난 남매의 힘싸움 -

- 탑쌓기 명승부 결과는…

 

힘이 장사인 남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구미 오누이탑. 내기에서 이긴 누이가 쌓은 죽장동 오층석탑(왼쪽)은 현재 구미 선산읍 죽장리의 한 사찰(죽장사)에 자리하고 있다. 1968년 국보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반면 동생이 쌓은 삼층석탑은 낙동강 건너 해평면 낙산리 허허벌판에 서 있다. 1968년 보물 제469호로 지정되었다.

 

◆Story Briefing

‘경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7편은 구미 선산의 오누이탑에 대한 이야기다. 예부터 오누이탑이나 쌍둥이탑은 서로 나란히 서 있으면서 그 모습도 닮은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계룡산 청량사지 오누이탑은 닮은 모습에, 피붙이 남매처럼 다정하게 붙어 서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동사 쌍둥이탑도 서로 외로울세라 짝이 되어 한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구미 선산에 있는 오누이탑은 그렇지 않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모양도 다르다. 한쪽은 오층석탑이고 한쪽은 삼층석탑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어느 쪽에서도 서로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두 탑을 오누이탑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연 때문일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거인 오누이의 힘자랑

“어쩌다 저런 거인들이 내 배에서 나왔는지……”

어머니는 싸움질에 여념이 없는 남매를 보며 혀를 찬다.

아침부터 저 모양이다. 먼저 잠을 깬 딸이 남자 동생을 깨우는가 싶더니, 부리나케 함께 산으로 내달아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는 누가 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지 내기를 한다. 돌을 들어 올려 내던지는 소리가 쿵쿵 난다. 동네 사람들이 마을 앞에 나와 산을 올려다보면서 감탄을 한다.

“장사 났네. 장사 났어.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봐도 예사 아이들이 아닐세.”

열 살도 안 된 꼬마들이 어른도 들지 못하는 돌들을 가볍게 들어 던지는 것이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덕진 곳에는 남매가 내기 삼아 던져 놓은 돌들이 산처럼 이쪽에 쌓였다가, 다시 저쪽으로 옮겨지곤 한다. 어머니는 그런 딸과 아들을 향해 목청을 돋우어 부르곤 한다.

“얘들아, 밥 먹으러 오너라!”

그러면 남매는 서로 먼저 내려오려고 산비탈을 내달려 온다. 비호같다. 얼마나 체구가 좋은지 그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천둥 치는 듯하다. 그러고는 보리밥일지언정 푸짐하게 차린 상 앞에 앉아 폭풍우처럼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것이다. 고봉밥을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는 밥이 더 없는지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린 것들이 살림을 거덜 낸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한 그릇씩 더 퍼서는 상에 올려놓는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남매는 태어날 때도 예사롭지 않았다. 딸은 태아 적부터 덩치가 커서 낳는 데 생고생을 했다. 그 울음소리가 웬만한 사내아이보다 커서 가히 천지를 진동시킬 정도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살림밑천이라는 첫딸 아닌가? 어머니는 그 우람한 딸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아기의 손이 엄마의 주먹을 감싸자,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아이쿠, 얘 힘 좀 보소. 이게 어찌 어린애 손힘이오?”라며 자랑을 해댔다.

이어서 또 애가 들어섰는데,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역시 힘이 장사였다. 먼저 나온 딸이 동생을 밀쳐도 막무가내로 버티는 힘이 대단했다. 둘은 가까이 두면 언제나 티격태격했다. 어머니는 그런 남매가 든든하기도 했지만, 내심 겁이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덩치가 커서 제대로 거두어 먹이기가 여간 벅차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집안에 장사가 났다는 소문이 다른 동네까지 퍼져나가 돌아다니는 모양이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예부터 고을에 장사가 나면 나라에서 가만 놔두지 않았지 않은가. 혹시라도 그 힘으로 나라에 해를 끼칠까 봐 미리 제거를 하기도 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만 보이면 힘 단속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고민을 알 리 없었다. 타고난 힘을 주체할 수 없어 어디든 내닫기 예사였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려 돌리거나 멀리 던지기가 예사였다. 곰처럼 작은 나무들은 뿌리째 뽑아 내던지기도 했다. 남동생이 생기자 누나의 힘자랑은 더욱 기세가 높아졌다. 매일 동생을 부추겨 내기를 하느라 온 천지가 우당탕거렸다. 그런 애들의 힘을 누그러뜨리려고 밭뙈기를 넓히거나 돌밭을 개간하는 일을 시키면 그것도 남매가 내기로 하면서 순식간에 일을 쳐내는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힘이었다. 덕분에 수확이 늘어나 살기는 나아졌지만, 남매의 기세 때문에 어머니의 불안은 더욱 높아만 갈 뿐이었다.

열 살을 넘어서면서 그 기세는 더욱 강성해진다. 남매는 산과 들을 내달리면서 종일 내기에 골몰한다. 산과 들에서 풋나무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면서 며칠을 집에 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어머니는 자주 딸과 아들을 부르지만, 대답을 듣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머니는 자주 사립문 밖에 서서 앞산과 들을 내다보며 불안해한다. 산과 들, 그리고 강가에서는 남매의 숨결이 거칠게 배어 있음이 느껴진다. 그 기세가 야성적이어서 누구든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저 기세를 어떻게 누그러뜨려야 하나? 무슨 방법이 없을까?”

어머니는 언제나 그 생각에 골몰한다.

 

#2. 탑 쌓기에 목숨 걸다

어느덧 장사 오누이의 나이가 스무 살 안팎에 이른다. 어머니도 늙음을 느낀다. 마을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강을 사이에 두고 질펀하니 들이 펼쳐져 있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가던 승려가 어머니에게 탁발을 한다. 감자와 보리쌀을 한 바가지 퍼서 승려의 탁발 주머니에 부어준다. 승려는 인사를 하면서 잠시 들을 내려다보며 쉰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참 좋은 자리네. 이 자리에 탑이라도 세우면 얼마나 멋질까?”

“탑이라니요. 우리 집터가 절 자리란 말입니까?”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탑을 세우는 일은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건 아니지요. 큰 인연이 닿아야 가능할 뿐입니다.”

승려는 인사를 하고는 가 버린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하여 남매를 불러 앉히고는 말한다.

“나도 이젠 꽤 늙었구나. 너희들 앞에서 내가 원을 세우고 싶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무슨 원인데요?”

“스님이 이 자리가 절터라는구나. 내세의 복을 짓기 위해서 우선 탑이라도 조성하고 싶다만……”

“그거야 제가 쌓지요.”

딸이 말했다. 아들 역시 지지 않고 말한다. “아니요. 제가 쌓겠습니다, 어머니.”

둘은 금세 으르렁거린다. 어머니는 말한다.

“그래, 너희들은 힘이 세니 그런 일을 쉬 해낼 수 있겠지. 힘을 합해서 탑을 지으면 더 좋지 않겠니?”

이에 남매는 고개를 흔든다. 혼자서 해내겠단다. 어머니는 말한다.

“그렇다면 내기를 하면 어떻겠니? 누이는 여기서 오층탑을 쌓고, 저 큰 강 건너편에는 동생이 탑을 쌓는 거야. 먼저 쌓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남매는 좋다고 한다. 어머니 역시 잘 됐다고 여긴다. 탑을 쌓다 보면 그 거친 성정이 순화가 되리라고 믿은 것일까?

그리하여 오층탑 먼저 쌓기 내기가 바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부터 두 가지 얘기가 전한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 누이는 죽장동에서 탑을 쌓고 동생은 낙동강 건너 해평면 낙산동에서 탑을 쌓는다. 그런데 처음부터 누이가 남동생을 앞지른다. 아들이 먼저 쌓기를 원했던 어머니는 이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궁리 끝에 딸에게 말 일천 필을 한양에 몰아다 주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딸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양에 갔다 와서도 여전히 누이가 먼저 탑을 쌓는다. 어머니는 다시 궁리한다. 딸에게 뜨거운 팥죽을 먹이면 먹는 시간이 길어 아들이 따라 붙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팥죽을 팔팔 끓여주면서 배고프니 먹고 하라고 억지로 권한다. 그래도 누이가 더 빠르다. 결국 딸이 먼저 죽장동에 오층석탑을 쌓는 바람에 아들은 탑 쌓기를 그만두어 지금의 낙산동 삼층석탑이 된다.

 

두 번째 얘기는 딸을 더 사랑한 어머니의 모습을 강조한다. 어느 해 오누이는 심한 의견 충돌이 있어 힘을 겨루어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을 죽여 버리기로 한다. 아들은 오십 리나 떨어진 금오산 중턱에 있는 큰 돌을 가지고 오고, 딸은 돌을 열두 자 높이로 쌓아 올리기로 약속한다. 이튿날 아침 해뜨기 전까지 먼저 끝내는 쪽이 이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남매의 어머니는 성질이 아주 사납고 괴팍스러웠다. 딸이 이기기를 바라서 일부러 아들을 먼 곳까지 심부름을 보내고 많은 일도 시킨다. 이튿날 날이 밝자 딸은 탑 꼭대기에 돌을 얹었으나 아직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늦게야 돌아오던 아들은 동네 어귀에서 멀리 쌓아 놓은 탑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그는 죽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그만 바위를 그곳에 던지고 멀리 도망해 버린다. 아들이 버리고 간 돌은 아직도 절 아래의 동네 어귀에 남아 있다고 한다.

 

#3. 국보로 우뚝 선 탑

아들과 딸을 선호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두 이야기 속에서 극단으로 달리 나타나는 게 이상하고 재미있다. 아들 선호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풍습이지만,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현상은 흔하지 않다. 굳이 아들을 제쳐 두고 딸이 이기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심리상태는 어떠했을까? 아들을 싫어하는, 일종의 남성혐오증을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을까? 남성 혐오는 남편과의 불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일까? 남편이 죽은 후 남편으로부터 받은 학대와 멸시를 떠올리면서 그것이 상처가 되어 남성을 미워하게 돼 그 반작용으로 왜곡된 딸 사랑이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을 하는 이들도 있다. 말하자면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들은 죽은 남편을 떠올리는 존재이며, 딸은 어머니 자신의 자아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화 속에 나오는 오누이탑은 이야기의 현장에 남아 있다. 딸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탑은 구미 선산읍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죽장리의 한 사찰(죽장사)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높이 10m에 달하는 오층석탑이다. 반면에 동생이 쌓은 탑은 낙동강을 사이에 둔 해평면 낙산리 허허벌판에 있다. 내기에서 진 아들이 탑 쌓기를 그만두어 삼층석탑으로 서 있다. 이야기의 전개가 그렇듯 승자인 누이가 만든 오층탑은 당당하고, 패자인 남동생(또는 오빠)이 만든 (또는 만들다 만) 삼층탑은 초라하다. 생김새가 그렇고, 보존상태도 그렇다. 특히 죽장리 오층석탑은 국보 제130호로, 오층석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탑에 속한다. 안동과 의성 지역에서 유행했던 모전석탑(전탑의 양식을 모방한 석탑) 계열로, 웅장하고 세련된 통일신라 석탑의 우수한 조형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공동기획:Pride GyeongBuk 경상북도

글=이하석<시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