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2, 조선일보]
피카소처럼 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천재를 꼽으라면 사람들은 흔히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를 떠올린다. 둘은 모두 20세기 초반에 나란히 자신들의 대표적인 업적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피카소는 1907년 '아비뇽의 여인들'을 내놓으며 큐비즘의 시대를 열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현대를 만든 두 천재'의 저자 아서 밀러는 창의성이란 통합적 사고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특히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은 언어적 사고보다 시각적 사고로 천재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한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다분히 시각적인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많은 유사성을 지니지만 이들이 천재성을 드러낸 과정은 무척 다르다. 때마침 2013년 프로야구 시리즈가 시작되었으니 이들을 야구 선수에 비유해보련다. 아인슈타인은 타율은 그리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장타만 노리는 선수였다. 그의 상대성 이론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그런 홈런이 아니다.
반면 피카소는 좋은 공 나쁜 공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며 높은 출루율을 자랑한 선수였다. 워낙 자주 휘두르다 보니 심심찮게 홈런도 때렸고 때론 만루홈런도 나온 것이다. 피카소는 평생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솔직히 평범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워낙 많이 그리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많은 수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 나오는 어느 도예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학급을 둘로 나눠 한 조는 각자 자신의 최고 걸작 하나씩만 내게 하고 다른 조에게는 제출한 작품 전체의 무게로 점수를 매기겠다고 했는데, 결과는 뜻밖에도 '질' 조가 아니라 '양' 조에서 훨씬 훌륭한 작품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단타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홈런만 노리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스스로 물어보라, 자신이 아인슈타인인지. 고개를 떨구며 아니라고 답하는 선수들에게 나는 피카소처럼 살자고 권유하고 싶다. 머리만 좋다고 모두 대단한 업적을 내는 건 아니다. 섬광처럼 빛나는 천재성보다 성실함과 약간의 무모함이 때로 더 큰 빛을 낸다. 피카소처럼 그저 부지런히 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저만치 앞서가는 아인슈타인의 등이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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