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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라면 4만 그릇 먹어… 안 질려, 즐거우니까"

죽장 2013. 4. 3. 10:41

[2013.4.3, 조선일보]

"50년간 라면 4만 그릇 먹어… 안 질려, 즐거우니까"

 

"하루 보통 라면 3~4개는 맛봤으니 평생 먹은 라면이 족히 4만 그릇은 될 겁니다."

1963년 라면이 한국에 상륙한 지 올해로 반세기. 1960~70년대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던 라면은 이제 80여 개국으로 수출되는 한류 상품 중 하나가 됐다. 박수현(60) 농심 연구개발 총괄전무는 업계 최고참 라면 연구원이다.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뒤 농심에 입사한 해가 1979년. 너구리, 안성탕면, 신라면, 짜파게티, 육개장 사발면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박 전무의 라면 50년사가 흥미진진하다. 그의 '첫 라면'은 50년 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연탄불에 끓인 라면이었다. "면발에서 고소한 맛이 났어요. 당시 면요리라고 해야 멸치 육수에 만 소면, 짜장면 정도였거든요. 기름에 튀긴 음식 구경하기 어렵던 시절, 유탕(油湯)면은 고소한 데다 품격마저 느껴졌죠."

농심 박수현 전무는 “새로운 라면을 개발하는 것은 늘 즐겁다”며 “즐겁지 않았으면 질렸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태경 기자

삼양라면을 필두로 풍년라면, 해표라면, 스타라면, 닭표라면이 출시됐다. 당시 라면은 '만능 해결사'였다. 찌개에 라면 수프 조금만 넣으면 국물이 달라졌다. 직접 밥에 뿌려 먹기도 했다. 박 전무는 "1970년대 군 복무 시절 라면이 나오면 취사병, 선임병, 간부까지 수프를 조금씩 빼돌려 결국 라면 10개에 수프 2개꼴로 넣었다. 나머진 간장을 넣어 간을 맞췄는데 그것도 맛있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80년대는 라면의 황금기였다. '배고픔을 달래는 음식'에서 기호 식품으로 자리 잡아 가며 제품도 다양해졌다. 우동 같은 면질(麵質)의 라면,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짜장면' 같은 새로운 제품이 쏟아졌다. 초보 연구원이었던 박 전무는 우동 면질을 찾기 위해 동료 4명과 5개월 동안 먹고 또 먹었다. 그는 "보통 라면 10그릇은 먹고 퇴근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너구리(1982년)다. 1986년 한국 라면의 수출길을 처음 튼 것도 너구리였다. 짜파게티(1984년)는 70년대 이미 출시된 짜장라면을 보완 발전시킨 제품이었다. 연구원들이 팀을 나눠 '가장 한국적인 짜장면' 맛을 찾아 전국을 유랑했다. 그는 "당시 짜파게티 때문에 중국집들이 다 망한다고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닭 육수를 기본으로 하는 라면 업계에 '소고기 라면'을 파격 출시한 얘기도 재밌다. "신춘호 회장이 한국인들은 소고기 육수를 선호한다는 점을 간파하셨죠. 그걸 얼큰한 맛이 나게 하려고 전국의 고추는 모든 품종을 다 먹어봤어요." 그렇게 탄생한 신라면(1986년)은 지난 27년간 220억개가량 팔렸다.

2000년대 들어 쌀국수, 냉면 등 다양한 라면이 출시됐다. 박 전무는 "쌀국수면 제조 기술력은 우리가 일본보다 최소 2~3년 앞서 있다"고 자부했다.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며 라면을 찾는 소비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50년 전 라면을 지금 먹는다면 짜서 입맛에 맞지 않을 겁니다. 시대에 따라 입맛이 변하듯 라면의 시대적 소명도 바뀌어 왔습니다. 우리 목표는 간편하면서도 영양 좋은 라면을 개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