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엄마 같다

죽장 2012. 9. 11. 15:21

엄마 같다

 

누님은 함께 울었던 때를 회상한다. 그 여름 모내기하러 간 엄마를 찾아 논두렁길을 미끄러지며 가는 데, 등에 업힌 너는 배가 고파서 울었고,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는 너를 감당 할 수가 없어 나도 울음이 나왔어. 꼬챙이를 주워 우는 놈의 엉덩이를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는 누님. 오늘 누님의 시작 레퍼토리는 울음이다.

 

아이는 엄마의 가슴에 안겨 젓꼭지를 물고도 울음을 그치지 않더란다. 아무리 빨아도 엄마의 쭉정이 젓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목구멍으로 두어 모금 넘어간 것이 전부였으니 배고픔이 해소되지 않은 아이가 울음을 그칠 리 없었지.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무논으로 들어서는 엄마도 마른 눈물을 삼켰으리라. 눈물 많던 날의 사람들이 아닌가.

 

며칠 전 누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웃에 부탁해서 마른 고추를 몇 근 사두었으니 언제든지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받은 후부터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누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오늘 저녁답에 갈 테니 기다리지는 말라고 전화를 걸었다. 잔멸치 한 포대, 참기름 발라 구운 김 한 봉지에다 특별히 잘 익은 바나나까지 큰 놈으로 한 뭉치 사서 차에 실었다. 올 여름 허리가 더 굽었을 누님이다.

 

일흔 세 살의 누님은 늦여름 해 넘어간 마당에 짚멍석을 깔고 앉아 계셨다. 마냥 기다리는 지루함을 이길 수 없었던지 피땅콩을 포대 째로 내와서는 알이 꽉 찬 것들만 따로 골라내고 있었다. 옆에 놓인 포대에는 꼬투리 긴 양대 묶음 여러 개와, 여름 내내 말린 고구마줄기, 고사리, 참비름뭉치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들어 있다. 힘줄만 굵은 누님의 마른 손등 같다.

 

이 고구마줄기는 진짜 맛이 있고, 이 고사리는 시장에서 파는 물건과는 진짜로 다르다면서 진짜를 강조한다. 허리도 아프다면서 이런 것은 왜 했느냐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일어섰다. 더 붙잡아도 주저앉지 않을 것임을 알고 누님도 따라 일어선다. 어둠 속을 날고 있는 반딧불이를 쫒다가 누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문득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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