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4.2,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퍼옴]
스무 살의 꿈
프랑스 샹송 '어제만 해도(Hier encore)'는 "어제만 해도 나는 스무 살이었네"로 시작한다. 노래 속에서 중년 남자는 "나는 시간을 쓰다듬고 삶을 갖고 놀았지"라며 청춘의 패기를 회상한다. 그러나 "허공에 흩어진 수많은 계획들"을 아쉬워하고 "나는 미친 짓을 하다가 시간을 잃어버렸네"라며 탄식한다. "이제 내 스무 살은 어디로 갔나"라고 맺는다.
▶4·19세대인 김광규 시인은 1978년 세밑, 18년 만에 대학 동창생들을 만난 일을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겼다. 혁명을 외쳤던 친구들은 혁명을 두려워하는 기성세대가 됐다. 넥타이를 맨 그들은 처자식의 안부와 월급 액수부터 물었다. 정치 이야기는 낮은 소리로 나눴다. 시인은 친구들처럼 어깨를 구부린 채 헤어지며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고 읊었다.
▶작가 이문열은 1970년대 초 대학 시절을 중편 '우리 기쁜 젊은 날'에서 회상했다. '나'는 자유분방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독학으로 얻는 지식에 도취해 강의를 빼먹곤 했다. '나'는 수첩에 '보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이라는 글을 쓴 뒤 대학을 그만뒀다. 서른을 훌쩍 넘겨 '나'는 수첩을 들여다보곤 "내 생각이라기보다는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의 한 구절로 생각된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본 글은 치기(稚氣)로 가득했고 너무 낯설었다.
▶이제 마흔을 넘긴 그들은 진료와 강의에 시달리며 스무 살에 품은 꿈을 시나브로 잊고 있었다. 그러다 문학을 가르친 은사가 빛바랜 원고를 보내주자 제자들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답장을 썼다. 동창들끼리도 마음속에 묻어둔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접었던 꿈을 되살려 해외 의료봉사를 결심한 경우도 있다. 문학은 꿈으로 마음의 병을 다스린다. 몸의 병을 고치는 의사들이 문학 스승이 보낸 추억의 선물 덕분에 묵혀뒀던 꿈에서 먼지를 털어냈다. 몸이 늙어 흘러간 청춘을 한탄하긴 쉽지만, 꿈만은 마음속에서 늘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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