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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牧民官)

죽장 2011. 12. 10. 23:42

[2011.12.10, 조선일보, 만물상]

목민관(牧民官)

(김태익 논설위원)

 

중국 후한시대 양진(楊震)이 지방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어느 고을에 묵었다. 늦은 밤 그곳 현령이 금 열 근을 갖고 찾아왔다. 양진이 받기를 거절하자 현령이 말했다. "지금은 밤입니다. 저와 태수님 빼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양진이 조용히 현령을 타일렀다. "그렇지 않지. 우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네. 그리고 자네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중국 고사다.

▶다산은 자신이 암행어사도 해봤기 때문에 지방 관리들의 부패와 비리를 잘 알았다. 그는 "제대로 된 지방관이라면 한 수레쯤의 책을 가져가 공부를 하며 백성을 다스려야 할 텐데 요즘 현령들은 달력 한 장 달랑 들고 갈 뿐"이라고 개탄했다. 다산은 지방 관리들이 책을 안 갖고 가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임기가 끝나면 수레 가득 재물을 싣고 돌아와야 하는데 책이 많으면 재물을 많이 못 싣기 때문이라고.

▶조선왕조는 청백리와는 별도로 탐관오리 명단을 만들어 부패를 엄하게 다스렸다. 한번 부정을 저질러 장리록(贓吏錄)에 오르면 자손 3대까지 과거에 합격해도 탈락시키거나 중요한 직책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부패는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구한말 선교사로 왔던 헐버트는 "관직을 일반 상품처럼 사고파는데 지방 수령 자리는 500달러쯤"이라며 부패를 조선이 망한 원인으로 꼽았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측근이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됐던 전북 임실군수가 그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군수직을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임실군은 1995년 첫 민선 군수를 뽑은 이래 4대째 군수가 모두 뇌물수수·비리 등으로 사법처리되는 셈이다. 임실군만이 아니다. 경북 영천과 청도, 전남 화순에선 세 명의 시장·군수가 사법처리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가진 권한은 인사, 인허가, 관급사업 배정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모두 주민 실생활과 관련된 것이어서 군수가 검은돈이나 비리 유혹에 빠지면 그 폐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산이 "다른 관직은 탐(貪)해도 좋으나 목민의 관직은 탐해선 안 된다"며 지방 수령의 도덕성을 유달리 강조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모든 지방관들이 "하늘과 땅, 너와 내가 안다"는 4지(四知)의 가르침을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