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5, 중앙일보 사설]
기업이 학벌주의 버려야 나라가 산다
고졸자 대학 진학률이 82%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다들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고졸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해 1000만원 안팎의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간다. 문제는 대졸이 취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믿는다. 체면을 중시하는 이 사회 풍토가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전도 건지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대학에 간다. 만연한 학력 인플레가 그 결과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역시 기업이다. 사람을 쓰는 기업들이 고졸자를 냉대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바뀔 것 같다. 어제 중앙일보 1면에 눈길 끄는 기사가 실렸다. 미래테크라는 경남 함안 소재의 한 중소기업이다. 공고를 졸업한 박희천(49) 사장이 2008년 창업했다. 풍력발전기용 부품을 만드는데 첫해 4억원이던 매출이 3년 만에 130억원을 바라본다고 한다. 지방이라 공장 부지가 싸서 상대적으로 작은 부담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유능한 직원을 데려오는 일이었다. 다들 대도시로만 갈 뿐 시골 중소기업을 선호할 젊은이는 정말 드물다. 그는 ‘직원 제일주의’를 내걸었다. 고졸자 초봉을 2400만원으로 대기업 못지않게 제시했다. 호봉도 대졸자와 차이를 두지 않았다. 관리직·생산직에 승진 차별도 두지 않았다. 고졸이라도 입사 3년이 지나면 야간대학 학비도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똑똑한 청년들이 몰렸다. 현재 직원이 26명인데 그중 공고 출신이 14명이다.
중소업계 생산현장은 일손 부족이 심각하다. 수도권은 그나마 낫다. 지방 중소기업들이 버티기 어려운 이유다. 사람을 뽑아서 좀 쓸 만하다 싶으면 떠나버린다. 이런 악순환은 오래됐다. 반면 대졸자들은 취직을 못해 애태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올 2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26만2000명 가운데 셋 중 하나는 아직도 실업 상태라고 한다. 신규 대졸자 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이들은 중소기업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학 졸업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박 사장은 “기업이 고졸자를 대졸자 못지않게 대우한다면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크든 작든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졸자 선호 현상을 낮춰야 한다. 똑똑하지만 가정형편상 대학을 못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지난 6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생산직 70명을 공채했다. 지원자를 고졸 및 2년제 대졸자로 제한했다. 그런데도 7000명이나 몰렸다. 회사 측이 원하는 인재를 뽑고도 남을 집단이다.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더 힘을 쏟는 동시에 문호를 고졸자들에게 더 열어야 한다. 그것이 쓸데없는 학력 인플레를 낮추는 방법이다. 대졸 실업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고졸자들이 쑥쑥 취직하는 걸 보여줘야 사회가 달라진다. 이렇게 입사한 고졸자들의 충성도는 더 없이 높을 것이고 당연히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업이 학벌주의에서 벗어날 때 대한민국의 실업문제도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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