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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교과연구회와 함께해온 나의 교직인생

죽장 2011. 10. 18. 13:59

 

공업교과연구회와 함께해온 나의 교직인생


○ 시작하며

  며칠 전에는 금오공고의 곽정용 교장선생님께서 연구회의 일정을 알려왔었는데, 오늘 낮과 밤에는 연이어 김재천 선생님으로부터 연구회의 정기모임을 앞두고 걱정하는 전화를 받았다. 금년으로 우리 공업교과연구회가 회지 20호를 발간한다고 한다. 공·사적으로 그간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앞날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 공업교과연구회의 회상

  출범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공업교과연구회의 역사가 영주공고에서 출발하여 현재에 이르는 내 교직생활의 전부나 마찬가지이다. 우선 기억의 저편으로 희미해져가는 우리 연구회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경북교육청에 근무 중이셨던 장대식 장학사님의 전언에 따라 경주공고에 근무 중이던 신호명 선생님과 내가 도내에 산재해 있는 선생님들의 동의를 얻어 경북교육청에 정식으로 등록한 것이 우리 연구회의 힘찬 출발이다. 출범 이후 평해공고 교장을 끝으로 퇴임하신 현종태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공업계에서 두루 존경받는 분들이 회장의 소임을 연이어 맡으면서 회의 명맥을 이어왔다. 그동안 국어, 영어, 수학교과 등 대단위 연구회들과 비교해 볼 때 회원수의 열세를 감내해야 했고, 재정지원도 변변찮은 가운데 운영을 책임진 임원들의 노고도 만만찮았다.

  그래도 일년에 한 번이나 두 번 만나는 교직동료들의 얼굴을 대하면서 우리들은 그 의미와 가치를 찾았었다. 전공 관련 우수논문을 발표하여 교직생활과 교과지도에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고, 승진이나 전보와 관련된 개인적인 애로사항을 토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더러는 기능경기대회나 실기경진대회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획득하는 기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벽지학교가 없는 교과의 특성으로 인하여 순수 공업고등학교 근무 교사가 기술교과와 비교해 볼 때 승진에의 불리함을 늘어놓는 동병상린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 학교 저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였으니 만나면 반가웠다. 각종 경기대회에서는 소속 학교나 가르친 제자의 명예를 걸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동료도 이 날만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 좋았다.


○ 공업교육의 어제와 오늘

  지나간 어느 시대에도 그랬었지만, 좁은 입지에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여건상 공업교육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우리의 자부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 국가산업인력을 양성 배출하여 수출대국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우리의 본업에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또 지원자들의 성적이 하위를 맴돌거나 정원미달의 아픔까지도 있었고, 또 졸업생들 대부분이 산업현장보다는 대학진학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현상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제자들의 취업을 위하여 산업체를 전전하며 현장실습을 호소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지만, 요즘은 기술 인력으로서의 부가가치를 인정받는 산업체를 골라 취업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다시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들이 공업고등학교로 밀려들고, 우리의 손을 거친 기술 인력이 제대로 대접 받으면서 산업현장에서 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 뿐 아니라 최근에는 마이스터고를 선두로 해외에까지 취업영역이 확대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국내외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회사가 승진과 보수에서 대학졸업자와 차별 철폐를 내걸고 시행한 사원모집에서 일대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그것이 마치 나의 일인 양 즐거웠다. 이것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최근 3연패를 했다거나 이 대회를 17번이나 석권했다는 뉴스보다 훨씬 더 희망적인 소식이다. 


○ 나의 교직 인생

  영주공고에서 시작한 나의 교사생활도 경주공고와 흥해공고를 거치면서 마감을 하고, 1996년에 장학사로 전직이 되었다. 영주교육청, 상주교육청을 거쳐 1999년 9월부터 경상북도교육청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에 경북생활과학고 교감, 2005년에 상산전자고 교장이 되었다. 2006년에 다시 도교육청의 장학관, 과장을 거치면서 직·간접으로 공업교육과 불가분의 인연을 맺어왔으나, 지난 3월 현재 근무 중인 구미교육지원청의 교육장으로 발령받아 나오면서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졌다.

  그러나 공업교육연구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변치 않고 있다. 매일 아침 신문 스크랩을 읽을 때마다 교육청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뉴스보다 공업교육과 관련 있는 기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특히 최근에는 취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정부시책의 변화에 따른 특성화 고등학교의 아주 발전적인 기사들이 많아 기분을 흐뭇하게 해준다.

  지난 9월 22일에는 국무총리 공관에서 있었던 초·중등교육 전문가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는 전국의 초·중·고 교장과 교육장 각 1명, 대학교수, 연구전문가, 언론인, 학부모 각 1명씩, 이렇게 모두 8명의 교육자들이 초청되었는데 나는 전국의 교육장 대표로 참석하여 우리나라 특성화 교육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내용을 설파하였다. 김황식 국무총리를 포함하여 참석자들 모두가 내 말에 적극 동의했음이 지금도 자랑스럽다. 


○ 마치며

  그동안 공업교육에만 종사해왔던 나의 교직 인생도 이제 끝이 보인다. 사실은 동년배들이 정년을 맞은 금년이지만 호적을 늦춘 아버지 덕분에 아직도 몇 년 더 교육현장에 머물게 되어 있다. 남은 기간동안 공업교과연구회를 비롯하여, 공업교육의 현장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는 동료들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2011.10. 공업교과연구회지 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