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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견(識見)과 사려가 사군자(四君子)같은 어머니

죽장 2011. 5. 13. 14:37

[2011.5.13, 조선일보]

식견(識見)과 사려가 사군자(四君子)같은 어머니



  퇴계는 양반가문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생후 7개월 만에 부친이 작고 하셨다. 부친의 나이 40세에 작고했으니 가정 형편도 상당히 어려웠고 부친의 훈도를 받지 못하고 성장 하였다. 부친을 여의던 당시 맏형 한 분 만 결혼을 하였을 뿐 다른 형제들은 다 어렸었기에 어머니 혼자 누에를 쳐서 생계를 유지 하였다. 퇴계 스스로 모친을 묘사하기를"뒤로 두 아들이 대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어도 부인께서는 그 영진(榮進)을 기뻐하지 않고, 항상 세상의 시끄러움을 걱정하였으며 비록 문자는 익히지 않았어도 그 의리(義理)를 가르쳐 주고 사정을 밝히는 식견과 사려는 사군자(四君子)와 같았다" 고 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퇴계의 학문과 인격 형성에 모친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가 장황하게 길어진 이유는, 정해진 규범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유학자의 원칙도 각 개인의 수준과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곧 정도(正道)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중국에 맹자의 어머니가 있다면 조선에는 한석봉의 어머니가 있다. 둘 다 어린 나이에 자식들을 유학(留學) 보내고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 갑자기 공부를 접고 집에 돌아 온 자식에게 석봉의 어머니는 불을 끈 다음, 석봉은 글을 쓰고 모친은 떡을 썰었다. 불을 밝히고 일정한 크기의 떡과 비뚤빼뚤한 석봉의 글을 보고 다시 되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마침 베틀에 앉아 길쌈을 하고 있던 맹자의 어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아들을 보고 기쁘기는 하였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아들에게 물었다.

  "네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느냐?” “아직 마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고 맹자가 대답하자, 맹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의 날실을 끊어버리고는 이렇게 아들을 꾸짖었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느냐? 차라리 그 夫子에게 옷은 해 입힐지라도, 오래도록 양식이 부족하지 않겠느냐? 여자가 그 생계의 방편인 베짜기를 그만두고, 남자가 덕을 닦는 것에 멀어지면, 도둑이 되지 않는다면 심부름꾼이 될 뿐이다."

  맹자는 어머니의 이 말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스승 자사(子思)에게로 돌아가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훗날 공자에 버금가는 유학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성(亞聖)으로도 추앙받게 되었다. 이것을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라 한다.

  지식과 지혜는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혜가 없는 지식은 교만을 불러 오기도 한다. 그 지혜와 사랑으로 자식들을 양육하는 어머니들을 어찌 위대하다고 아니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