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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으로 변한 '로봇英才의 꿈'

죽장 2011. 1. 13. 16:23

 [2011.1.10, 조선일보]

[입학사정관제로 KAIST 들어간 실업계 출신 끝내 자살]

뽑히긴 했는데… 절망으로 변한 '로봇英才의 꿈'



로봇대회 60여차례 수상 등 영재성 인정받아 합격했지만 미·적분학 연이어 낙제점 받아

'신입생 멘토' 과정 있지만 고민 상담 수준에 그쳐 일부선 "잠재력 평가에 문제"



전문계(실업계)고 출신으론 처음으로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입학한 조모(19)군이 성적 부진 등을 고민하다 지난 8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 KAIST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일 밤 11시 32분쯤 대전시 유성구 KAIST 교내 보일러실 앞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 위에 1학년 조모(19)군이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밤 9시 30분쯤 "조군이 '약을 먹고 죽겠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는 조군 친구의 신고를 받고 교내를 수색하다 숨진 조군을 발견했다. 조군의 기숙사 방에서는 빈 수면제통 12개가 발견됐다. 경찰은 "조군이 이번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은 데다 최근 여자친구와 헤어진 점 등으로 괴로워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의 전문계 D고 디지털정보전자과를 졸업한 조군은 2009년 KAIST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자 150명 가운데 전문계고 출신으로 유일하게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화제를 낳았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참가한 국내외 로봇경진대회에서 60여 차례 수상한 경력 등 로봇 분야 영재성을 인정받은 덕이다.


입학사정관제는 대입 전형의 다양화를 위해 도입된 제도. 교과 성적만이 아닌 학생의 잠재력, 소질 등을 평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발전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을 가능성과, 선발한 뒤 학생들에 대한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군 자살사건은 이같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9년 8월 성적보다 잠재력을 따진 입학사정관제로 전국에서 150명을 선발한 KAIST는 같은 해 9월 예비입학생을 위한 사이버 강의인 '브릿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비(非)과학고 출신 합격자의 수학·물리·화학과목 학습수준을 과학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일반고 출신 합격생 중 상당수가 입학 후 곧장 KAIST의 수학 및 과학 교과 수준을 따라잡기 힘들어 마련했다는 게 학교측 설명이었다. 숨진 조군도 이 브릿지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작년 1학기와 2학기 수강한 미·적분학에서 연이어 낙제점을 받아 크게 고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KAIST가 신입생을 위한 '새내기 세미나지도 교수제'와 멘토프로그램도 운영 중이지만 고민 상담 수준에 그치는 등 한계를 보이고 있다. 조군 상담 업무 등을 맡은 지도교수는 이날 본보 인터뷰 요청에 대해 "회의 중"이라며 통화를 거절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로봇 제작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합격한 조군은 당시 "수학·물리·화학 등을 영어강의로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일주일에 세 번씩 이어지는 강의 진도를 따라가야 하고, 쪽지시험에 과제물 부담도 만만찮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KAIST 내부에서도 '전문계고 출신 학생이 적응할 만한 충분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10학년도에 입학한 입학사정관 전형 학생들의 작년 1학기 평균평점은 3.01인 데 비해 같은 학년 과학고 출신 학생들의 평균평점은 3.59점으로 훨씬 높았다.


조군은 초등 2학년 때 과학잡지를 보고 부모를 졸라 로봇대회에 참가한 뒤 로봇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초등 6학년 때 부산시 정보영재원에 선발돼 4년간 영재교육을 받았다. 중학생 시절 고교생들을 따돌리고 로봇올림피아드 국가대표에 선발돼 2007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한국대회에서 대상을, 2008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세계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로봇 영재'로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인문계 고교에 다니다 D고 로봇동아리에 반해 전학까지 했던 조군은 "KAIST에 입학해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숨진 조군이 다녔던 D고의 한 교사는 "학교의 자랑거리인 조군이 KAIST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소식을 듣고 충격이 크다"며 "실업계 출신 학생에 대한 관심과 지도가 소홀하지 않았나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KAIST 관계자는 "전문계고 출신이 과학고 출신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특히 자존심 강한 학생들은 고민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