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3, 조선일보, ESSAY]
車판매왕이 된 꼴찌
자동차 영업사원 면접 시험장에 들어선 나는 양복 입은 게 어딘지 어색했다. 청과물시장 직원부터 공사판 막일, 농협 가스배달 일용직, 주유원을 거친 나는 그동안 양복 입을 기회가 없었다. 면접관들은 내 경력을 읽으며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직업을 거친 게 아마도 그들의 흥미를 끈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성적이 왜 이래…"라며 혀를 찼다. 고등학교 성적이 거의 꼴찌나 다름없었다. 2학년 350명 중 344등, 3학년 350명 중 246등…. "과거의 꼴찌는 지금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사회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절박한 각오를 보인 내 모습이 너무 진지했는지, 면접관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이었다. 2년제 대학 졸업한 지 5년 만이었다. 합격증을 받는 순간 아내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귀던 여자 친구가 덜컹 임신했다. 미래의 처갓집을 찾아가 인사드리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나도 괴로웠다. 번듯한 직장을 갈 능력은 없고, 무책임하게 일을 저지른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내 모습을 바꾸어 나갈지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었다. 학생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도 보았지만, 당시는 IMF 사태가 터진 해로 직장 잡기가 어려웠다. 다급한 마음에 서울 가락동의 청과시장에 취직했다. 새벽 2시부터 과일 박스를 나르고 배달도 다니고 창고 정리를 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새벽 시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일하는 것을 보고 나도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평생직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시장 일을 그만두었다. 모아 둔 돈도 없어 고향인 충청남도 공주의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무능력한 아들을 보는 부모님의 성화에 하루하루 보내기가 힘들었다. 결국 다시 공사판 막일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돈은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벌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공사판에서 젊은 날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 후 지역 농협 일용직, 동네 주유소 주유원 등으로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자동차 영업사원을 뽑는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은 그렇게 찾아왔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첫 차 판매 마수걸이는 때마침 태권도 도장을 열려던 중학교 친구가 해줬다. 봉고차를 한 대 팔았다. 그러나 그다음 한 대를 더 파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회사 출근 전에 아파트와 시장을 돌며 내 이름이 든 전단을 뿌렸다. 휴일에는 개인택시나 고객 차량을 찾아 "불편한 게 없느냐"며 묻고 다녔다.
한 업체를 수십 번씩 방문했다. 몇 달간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다. 한 업체 사장은 차 구입 상담을 하러 회사 사무실에 왔다가 나를 보고는 "당신이 차 영업사원이냐"며 놀라기도 했다. 식당에 식품재료를 납품하는 한 업체를 아침마다 일찍 찾아가 마당을 쓸어주고, 채소통을 치워주길 8개월이나 했다. 처음에 성가시다고 하던 그 회사 직원들은 나중엔 내가 안 나타나면 서운해했다. 어느 날 그 업체의 화물차가 망가졌다. 기회가 왔다. 나는 동네 형님에게 화물차 한 대를 일주일간 빌려 무료로 그 업체에 넣어주었고 부서진 차는 싼값에 수리해주었다. 사장은 얼마 후 화물차 1대를 주문했다.
밤·대추 등 농산물을 수거하는 한 업체에는 퇴근 후 찾아가 밤 11시까지 일을 도와주곤 했다. 2년 만에 그 업체는 나에게 2.5t트럭을 주문했고, 그 업체 거래처인 농가 10여곳도 잇달아 나에게 트럭을 샀다. 첫해 6개월간 차 40대를 팔았던 나는 이렇게 해서 다음 해는 125대나 팔았다. 나는 검은색 양복에 프로 운동선수들처럼 흰 색깔로 '○○자동차 임희성'이라고 이름을 새겼다. 내 자동차에도 내 이름을 새겨서 몰고 다녔다. 결국 2년 만에 전국 판매왕이 되었고, 다시 2년 동안 연속 전국 2등을 했다. 작년에는 357대를 팔아 다시 전국 판매왕이 되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3~4번 아파트나 시장에 나가 전단을 뿌리고 인사를 한다. 사실 한 달에 1만2000여장의 전단을 뿌리지만 그중 전단을 보고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한 달에 3~4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객들은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전단을 돌리는 것은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차를 많이 팔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내게 비법을 묻는다. 사실 먹고살기 위해 마지못해 일을 한다면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다. 일을 즐겁게 생각하고,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사랑할 때 비로소 프로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학교 공부는 비록 꼴찌였지만,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1등이 되려고 애쓴다.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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