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껍데기
신상숙
어머니는 닭 사료 한포를 십리 밖에서 머리에 이고 오셨다
닭장에서 암탉이 울 때마다
따뜻한 달걀이 하나 둘 모였다
아버지 밥상에 달걀 찜 한 탕기
출근하는 아들에게 따끈따끈한 수란이 오르고
오일장 서는 날마다 항아리 속에 달걀은
짚 꾸러미에 묶여 노루목을 넘었다
부모님의 편애에도
나는 달걀 반찬 한번 넘보지 않았고
달걀 양쪽에 구멍 내고 후루룩 마시는
오빠에게 껍질이 깨지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내 몫으로 남은 부뚜막에 빈 달걀껍데기 하나
생쌀 넣어 화로 불에 올려놓으면
보글보글 김이 들썩들썩거린다
껍데기를 가득 채운 노릇노릇 고소한 달걀밥
그 밥이 고소한 건
암탉의 울음으로 만든 매끄러운 껍질 속에
어린 계집애의 작은 눈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다
계집아이라는 연약한 껍데기
요즘도 그 껍데기가 관악기 되어
맘속에서 자꾸 바스락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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