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추천 문학작품

아흔을 눈앞에 두고 보니

죽장 2010. 11. 12. 15:42

[2010.11.12, 조선일보]

아흔을 눈앞에 두고 보니

조옥현 前인천고 교사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아침 식사 중에 허겁지겁 마루로 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가냘픈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중앙 우체국인데요, 선생님 앞으로 국제소포가 왔는데, 주소 불명으로 보관 중이니 자세한 것을 알려면 1번을 누르세요." 직감적으로 사기 전화란 생각에 미치자, 노여움과 함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온다. 며칠 동안 전화기는 벨소리를 한 번도 울리지 않고 침묵만 지켜왔다.

  오늘은 큰딸이나 막둥이, 아니면 고향 친구나 옛 동료, 어디선가 전화가 꼭 올 것만 같았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기대와 즐거움으로 기다리던 참이었다. 가끔 애들로부터 전화가 올 때면 "엄마에게 자주 전화해라"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냥 묻어버린다. 아내는 5년 전부터 가벼운 치매 증세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오늘따라 또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선배 교사의 전화였다. 곧 아흔살 생일이 되는데 몇몇 옛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한다. 아흔살, 남의 일이 아니다. 나도 손가락 몇 개만 더 꼽으면 아흔살이 된다. 인간 만사가 허무하고 무상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 선배는 나와 함께 4·19 때 교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학생들을 막으려고 교문을 지켰다. 지금 생각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당초 우리 교사 모임은 십수 명이 넘었으나, 벌써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 "밤새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진짜 실감난다. 오래되고 묵은 나무의 뿌리는 툭 차면 넘어진다. 그런 처지가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이다.

  얼마 전 음악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개성에 고향을 두고 단신 월남했던 그였다. 육십이 다 되도록 전셋집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간호사로 독일에 간 처제의 도움으로 간신히 집을 장만했다고 한다. 그때 우리를 초청해 그렇게 기뻐했던 그는 고통스러운 노후를 맞았다. 의류상을 하던 사위에게 자기 집을 담보로 내놓았다가 집이 넘어갔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사위는 외국으로 떠나고, 올 데 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그가 우리 집에 와서 눈물짓던 게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수양버들처럼 가는 몸매에 얌전했던 화학선생도 아들의 사업 밑천을 대주었다가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소식이 끊겼는데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익은 감도 떨어지고 설익은 감도 떨어지는데, 어쩌면 그 화살이 나에게 꽂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등 뒤에 소름이 끼친다.

  밤 열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여러 생각에 빠져 쉽게 잠들기 어렵다. 지난 80여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기뻤던 일들, 숨기고 싶은 슬프고 괴로운 일들, 지금도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었던 일들, 그리고 아직도 풀지 못한 묵은 문제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를 방송국 국제 아나운서에 응시하라고 떠밀었다. 350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는데 아내는 합격이 유보됐다. 기혼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2년 뒤에야 합격 연락이 왔다. 그날 기뻐 울던 아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손재주가 좋았던 큰아이가 3수의 어려움을 딛고 치대에 합격했다. 그땐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러나 내 마음 한쪽에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교사 월급을 아끼고 쪼개 집 한 칸을 마련한 게 내 재산의 전부다. 친구들은 "자식에게 다 주고나면 아예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적은 재산이라도 죽을 때까지 붙잡고 있으라고 한다. 이렇게 아이들과 미뤄놓은 숙제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러다가 잠이 든다. 하지만 그 잠도 그야말로 토막잠이다. 대여섯번의 화장실 출입, 가늘고 적은 양의 소변…. 그러다가 또 잠에 빠진다. 이번에는 꿈이다. 그야말로 흐리멍덩한 꿈들이지만 때로는 불안하고 긴박하고 공포스러운 경우도 있다. 모든 그런 것이 죽음의 시간을 재촉하는 전주곡인 것 같아 슬퍼진다.

  오늘은 새벽 네시에 깼다. 깼다기보다 잠에서 쫓겨난 셈이다. 잠자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아내와 동시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나보다 집 사람이 먼저 떠났으면 한다. 자식들에게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험한 모습을 차마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내가 세상에서 한 것은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친 것뿐이다. 인천과 서울에서 33년간 교사를 했다. 수천명이 되는 내 제자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고 싶다. "좀 더 열심히 가르칠걸"하는 반성에 다시 한 번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진다.

  누구나 늙는다. 그러나 난 준비 없이 노후를 맞았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게 후회뿐이다. 65세 정년퇴직하고 직업 없이 산 게 벌써 20여년이다. 지금이나마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지, 무엇을 남기고 떠날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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