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교육혼란 수습할 현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죽장 2010. 7. 9. 15:00

[2010.7.9 조선일보 사설]

교육혼란 수습할 현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서울·경기·강원·전남·전북에 친(親)전교조 성향 5명의 교육감이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돼 교육계가 혼란과 갈등에 빠졌다. 교육부와 친전교조 교육감은 당장 학업성취도 평가, 교원평가,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싸고 부딪히고 있지만 자율형사립고·고교선택제·평준화 문제 쪽으로 충돌의 범위가 확대돼 갈 것이다. 이번 개각에서 현 교육부장관이 유임되든 새 장관이 등장하든 교육부장관의 최대 임무는 교육 현장의 혼란과 혼돈을 정리하는 것이다. 지금 식으로 흘러가면 교육문제가 자칫 4대강·세종시처럼 전 사회적 갈등의 마당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교육부장관은 우선 교육 개혁을 밀고 나가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원안(原案)을 지켜내야 할 사항'과 '원칙의 범위 안에서 수정·보완·조정이 가능한 사항'을 구분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친전교조 교육감들 주장에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보이면서 교육 정책의 최종 평가자인 학부모들의 지지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교육 개혁의 영속적(永續的)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교장공모제 같은 제도는 장기적으로 옳은 정책이라는 데 이론(異論)이 없다. 그러나 교장 자리가 비는 학교의 56%에서 한꺼번에 공모제를 도입하겠다고 밀어붙이는 건 교사들의 반발을 조직화시키는 현명하지 않은 방법이다. 처음엔 10% 학교에서 시행한 후 10%씩 점진적으로 확대해가는 융통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한번 뒤처진 학생은 영구히 뒤처져 교육 대열에서 탈락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뒤처진 학생들을 조기(早期) 발견해 이들의 학습 의욕과 학습 능력을 북돋워주자는 것이다.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초등학교 6학년 82.5%가 '보통이상', 15.9%는 '기초학력', 1.6%는 '기초미달'로 판정됐다. 초6 때 1.6%이던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중3 때는 7.2%, 고1에선 5.9%가 됐다. 교육부는 2008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토대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많은 전국 1440개 교를 '학력향상 중점학교'로 지정해 인턴교사를 더 배치하고 대학생 멘토링도 지원해줬다. 친전교조 교육감들도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뒤처진 학생들을 빨리 찾아내 그들을 도울 다른 대안을 내놔야 한다. 전교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성적을 '보통이상' '기초학력' '기초미달'의 세 등급으로 구분하는 것을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일부 학부모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 역시 초등학교에서는 '기초미달' 학생만을 가려내는 방안을 도입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일이다.

교원평가제는 폭력·무능·나태 교사를 가려내 교정(矯正) 기회를 주고 우수교사에 '학습연구년'이나 해외연수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다. 국민의 86.4%, 교사의 69.2%가 교원평가제를 찬성한다. 그런데도 전북교육감은 취임 후 제일 먼저 교원평가를 폐지하는 일부터 손을 댔다. 지금의 교원평가는 교육청이 재량권을 갖는 교육규칙을 근거로 시행하고 있고 그 때문에 친전교조 교육감이 반발할 공간이 생긴 것이다. 정부가 교원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면 국회를 설득해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교원평가는 올해 처음 시행해보는 것인 만큼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교육부장관은 전국 모든 학교에 똑같은 평가방식을 도입해 한걸음에 목표를 달성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교사들 반발을 최소화할 교원평가 방안은 없는 것인지 계속 연구해야 한다.

'무상급식' 문제는 시야를 넓혀 우리 사회에서 진짜 지원이 절박한 아이들이 누구고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라는 차원에서 다루어 나간다면 국민도 어느 방식이 옳은지를 더 쉽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약속한 초등학교 무상급식, 초·중생 학용품비와 중학생 학교운영지원비 지원, 전문계고 수업료 면제엔 한 해 6200억원이 든다. 그 혜택은 중산층과 부잣집 아이에까지도 돌아간다. 얼마 전 가출 청소년들이 친구 여학생을 살해한 뒤 엽기적으로 시신을 훼손해 강에 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런 흉악 사건의 청소년 범죄자들은 대부분이 부모가 이혼한 탓에 할머니·할아버지와 살고 있거나 홀어머니 홀아버지 등 편모(偏母) 편부(偏父) 가정의 아이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어머니 아버지가 일터로 나간 사이 혼자서 집을 지키며 밥을 끓여먹고, 아무도 공부를 돌봐주지 않는 이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사회복지 정책과 교육 정책의 사각(死角) 지대에 버려진 아이들이다. 잘사는 아이들까지 점심밥을 무료로 주는 데 쓰겠다는 예산을 이런 결손가정 아이들이 교육의 사다리, 복지 정책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우리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욱 진보(進步)의 이름에 합당한 정책이다.

교육부는 수월교육·특기교육을 위해 지정한 자율형사립고·국제중 신입생의 20%를 빈곤층·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 중에서 선발토록 의무화하고 등록금도 면해주고 있다. 어떤 저소득층 부모는 아이를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으로 국제중에 입학시켜놓고 영어집중교육강습비 20만원, 스쿨버스비 87만원, 체육프로그램비 37만원, 여름해외봉사활동비 100만원 등 4개월간 250만원을 내라는 통지를 받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부장관은 지금 교육 정책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과 교육 정책의 효율성과 적합성을 놓고 빚어지고 있는 혼란을 포용력과 설득력과 돌파력을 적시(適時)에 적절하게 결합해 수습하는 현장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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