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원고와 자료

쑥 이야기

죽장 2010. 3. 31. 08:21

 

[2010.3.31. 조선일보]

아랫배를 따뜻하게… 여자한테 좋아요

봄이 되면 양지바른 풀밭 여기저기서 쑥 뜯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자라난 식물은 쑥이었다고 한다. 쑥은 생명력이 유달리 강하다. 식물은 찾아보기 어려운 버려진 땅에 오직 쑥만 자라난 경우가 많다. 망가지고 버려진 장소를 가리켜 '쑥대밭이 됐다'고 말하는 것은 쑥의 강인한 생명력을 알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쑥의 진짜 힘은 폐허에 뿌리를 내린 후부터 발휘된다. 땅에 자리를 잡은 쑥은 주위의 수분을 최대한 흡수한다. 먼저 죽은 쑥은 땅에 영양분을 남겨 새 쑥의 양분이 된다.

쑥이 쉽게 번식할 수 있는 비결은 수정 방법에도 있다. 국화과식물이면서도 같은 과의 다른 식물이 충매화(蟲媒花·벌레로 수정)인 것과 달리, 바람으로 수정하는 풍매화(風媒花)다. 폐허에도 바람은 부는 법이라, 바람 따라 어렵지 않게 자손을 퍼뜨린다.

강한 생명력은 뛰어난 약효로 이어진다. 쑥은 동서양 모두에서 의학적 기능을 해 왔다. 동양에서는 먹거나, 달인 물에 몸을 씻거나, 말려서 뜸을 떴다. 서양에서는 집시들이 쑥을 태워 악귀를 쫓거나, 역병을 치료했다. 그래서 의초(醫草)로도 불린다.

쑥은 단군 신화에 등장하면서 우리 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로 21일을 버텨 사람으로 변한 웅녀가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으니, 우리 민족의 피 속에는 대대로 쑥 향기가 전해 내려오는 셈이다.

신화이기는 하지만 웅녀이야기에 쑥과 마늘이 등장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다. 마늘은 강력한 천연 항생제다. 구워 먹으면 아랫배를 따뜻하게 해 준다. 쑥은 피의 저장 공간인 자궁을 따뜻하게 데워주기 때문에 여성에게 매우 좋다. 여성의 생리량이 적거나 너무 많은 경우, 아랫배가 차가워서 생리통이 있는 경우, 생리 주기가 불규칙한 경우에 쑥을 먹으면 효능이 있다. 임신 초기에 태아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피가 비치면서 불안한 경우에도 괜찮다. 냉이 많은 여성, 자주 설사하는 여성에게도 좋은 먹을거리이다.

쑥은 자궁을 데워주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에게 더 맞다.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일 경우에는 열을 돋울 수도 있다. 일상적인 음식인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고농도로 농축된 엑기스는 피하는 것이 좋다.

쑥 향기는 식욕을 돋우어 준다. 습진, 치질 등의 습(濕)한 기운을 말려서 증세를 호전시키고, 춘곤증으로 몸이 무거운 것을 가볍게 해 준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간 기능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이목구비를 소통시켜 머리를 맑게 한다.

한의학의 기본(침, 뜸, 약) 중 하나인 뜸의 주재료가 묵힌 쑥이다. 쑥뜸의 적용 범위는 무척 넓고 효과 또한 강력하다. 쑥은 진정 '의초'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