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남극 쇄빙선 아라온호
- 세계 20척밖에 없는 선박, 우리 손으로 만들고 실험… -
- 6월 기후조사하러 대장정 -
"남극의 얼음을 깨고 돌진할 때는 정말이지, 비포장도로에서 오토바이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배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고, 얼음은 쫙 갈라지거든요. 기막힌 장면입니다."
15일 인천항으로 귀국한 한국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Araon)호의 조타실에서 만난 김현율(金賢律·52) 선장은 "아직도 남극의 얼음 덩어리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듯하다"고 했다.
작년 12월 18일 김 선장은 극지연구소 연구원 15명과 선원 등 83명을 이끌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이후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를 거쳐 1월 23일부터 2월 10일까지 서남극의 케이프벅스, 동남극의 테라노바베이에서 얼음깨기 실험에 성공했다. 총 왕복거리가 3만3000㎞에 달한다. 남극·북극 결빙지역 탐사를 위해 작년 6월 한진중공업에서 진수된 아라온호는 60가지 탐지 및 모니터링 장비를 탑재한 첨단선이다.
"남극이나 북극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쇄빙선이 있어야 해요. 세계적으로도 러시아·이탈리아 등에 20척밖에 없는 것을 우리가 만들어 실험한 겁니다."
▲ 88일간의 남극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김현율 아라온호 선장
STX에 입사해 항해사를 거쳐 자동차운반선 및 광석운반선 선장을 맡으며 1년에 8개월은 바다에서 살았다는 그는 지난해 7월 인사팀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 경력을 가진 김 선장이 남극에 꼭 가달라"는 주문이었다.
"13년간 선장으로 일한 자동차운반선을 떠날 수 없다고 떼를 썼어요." 그는 "연구선 선장은 해본 적이 없어 솔직히 두려움이 앞섰다"고 했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에 결국 졌고, 그는 '얼음깨기'에 관한 책 수십권을 읽고 러시아 전문가들도 만나 공부했다. 김 선장은 "그동안 한국이 외국 쇄빙선을 빌려 연구해온 것을 알고 나니 '우리가 해내자'는 결심이 섰다"고 했다.
아라온호 팀의 목표는 두께 1m짜리 평탄한 얼음을 3노트(1노트=시속 1.8㎞) 속도로 깨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극에 도착하니 모양은 산(山)과 같고, 길이는 수십㎞에 이르는 거대한 얼음들이 둥둥 떠다녔다. 김 선장은 "남극에서 평탄한 얼음지역을 찾기란 산속에서 축구경기장 찾는 격"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1월 27일, 헬기 정찰 끝에 반경 7㎞ 정도인 평탄빙을 찾아 돌진했다. 조금씩 얼음을 깨고 가던 배가 갑자기 멈췄다.
"복판에서 딱 멈춰서더라고요. 속도가 너무 낮았던 겁니다. '아름답다'고 생각되던 얼음이 '질린다'는 느낌을 줬어요. 어쩔 수 없이 후진했죠."
조사 결과 배가 물에 너무 깊게 잠겨 가속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틀간 탱크에서 물을 빼는 등 무게를 줄여 깊이를 조정해 재실험에 나섰다. 덜컹거리는 배 사이로 얼음이 쫙쫙 갈라졌다.
그는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내 인생 최대로 어려운 숙제를 마친 느낌이었다"고 했다. '아라온호로는 불가능하다'던 러시아 쇄빙선원들도 '어떻게 해냈냐'며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아라온호는 이후 충격쇄빙으로 두께 6.8m짜리 얼음지역을 뚫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이런 과정에서 김 선장은 길게는 36시간이나 뜬눈으로 조타실에서 지내기도 했다. 뱃고동을 울려대도 절대 피하지 않는 펭귄떼와 충돌할 일촉즉발 위기도 있었다.
[2010.3.17. 조선일보]
'강의 원고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꽃잎 구조 본뜬 나노 입자 개발 (0) | 2010.03.25 |
---|---|
김연아 금메달로 5조2350억원 경제 효과 (0) | 2010.03.19 |
10년 후 세상을 바꿀 10대 기술 (0) | 2010.02.18 |
휴대폰 메모리 10배 이상 빠르게-.(서울대 박병국 교수) (0) | 2010.01.21 |
십대애행(十大碍行) (0) | 2010.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