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18 동아일보 사설]
양용은 ‘꿈과 땀’이 일냈다
양용은은 전날 밤 잠들기 전에 골프 채널을 한참 시청했다. 2위로 최종라운드에 나갈 그의 모습이 화면에 많이 비쳤다. 제주 ‘촌놈’이 미국에 와서 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텔레비전을 끄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일찍 잠을 청했다. 두세 번 잠을 깼다. 골프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거 우즈와의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잠을 깊이 들 수 없었다. 그는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대망의 날을 맞았다. 그러나 첫 번째 홀의 티 앞에 서자 초조함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판사판 해보는 거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의 미국프로골프(PGA) 순위는 110위였다. 양용은이 랭킹 1위인 우즈에게 진다고 실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청난 갤러리(관중)가 따라다녔다. 모두 우즈를 보러 나온 팬이었다. 마음을 비우자 공은 신들린 듯이 맞았다. 양 선수가 우즈를 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건 14번째 홀에서였다. 그린 주변에서 침착하게 칩샷을 한 공이 홀에 빨려 들어가 이글을 잡았다. 갤러리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양용은은 19세에 골프 클럽을 처음 잡은 늦깎이다. 제주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양 선수는 고교 졸업 후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부터 큰 꿈을 꾸지 않았다. 골프 연습장에서 티칭 프로가 되는 것이 소망이었다. 세미프로가 되고 나서 KPGA 프로로 꿈이 커졌다. 그리고 일본으로 아시아로, 최종적으로 전 세계 골퍼들의 꿈인 PGA에 도전했다. 프로에 입문한 1996년 국내 신인왕이 된 뒤에도 찬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연습에 매진했다. 흔한 골프유학도 다녀오지 못했다. 주로 유명 골퍼들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공부하고 연습했다.
누가 골프를 부잣집 아이들의 운동이라고 했는가. 양용은의 PGA 우승은 헝그리 골프의 승리라서 더 감동적이다. 어제 그는 PGA 올해 마지막 4대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 정상에 올라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우승기록을 세웠다. 1998년 박세리가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박세리 키즈들이 성장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 11승을 포함해 통산 82승을 올렸다. 양용은의 역할 모델은 PGA에서 7승을 거둔 최경주였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각고의 노력과 도전정신으로 쾌거를 이룬 감동 스토리가 청소년들에게 자극제가 돼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양용은 키즈’가 나왔으면 좋겠다. 꿈은 땀과 함께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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