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성공방정식 “100-1=0
어느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 장소에 종이뭉치가 떨어져 있었다. 아무도 그걸 치우려고 하지 않았는데, 오직 한 지원자만이 바닥에서 주워서 휴지통에 버렸다. 그 종이엔 '우리 회사에 입사한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몇 년 후, 종이뭉치를 주웠던 그 사람은 이 회사의 CEO가 됐다.
대만 최대 갑부였던 고(故) 왕융칭(王永慶) 포모사그룹 회장은 16세의 나이에 쌀 가게를 열었다. 이미 인근에 30개의 쌀 가게가 있었고, 그의 가게는 외진 골목에 있어 경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두 동생을 동원해 쌀에 섞인 이물질을 골라낸 뒤에 팔고, 노인 고객에게는 집으로 직접 쌀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로 큰 성공을 거둔다.
사소해 보이는 세심함이 개인과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신(神)은 언제나 디테일 속에 있고'(20세기 최고 건축가로 꼽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 1%의 부족이 일 전체를 망친다. 중국의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왕중추(汪中求·45) 씨가 쓴 '디테일(detail)의 힘(2004, 원제 細節決定成敗)'이란 책에는 이런 사례들이 가득하다. 디테일의 성공 신화 사례집이라 할 만하다.
그는 "100 빼기 1은 99가 아니라 0"이라고 말했다. "100가지를 잘 해도 단 하나를 실수하면 전체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디테일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중국 사람들은 일을 대충대충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데리고 있던 비서는 제가 가져오라는 서류를 한 번도 제대로 가져온 적이 없었습니다. 부하 직원이 적당히 한 일이 잘못 돼 제가 다시 고치느라 시간을 허비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중요한 협상 내용이 담긴 팩스를 보내야 하는데, 실수로 단축번호를 잘못 눌러 경쟁업체에 정보를 고스란히 갖다 바친 적도 있었어요. 그로 인한 손실은 그 직원의 몇 년치 연봉보다 더 컸죠.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디테일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쓰고 강연도 하게 됐습니다. 유능한 사원과 무능한 사원, 초일류 기업과 아닌 기업,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모두 디테일에서 비롯됩니다. '대충대충 적당히'는 절대 안 됩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라'는 평범한 말이 이렇게 큰 화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한 열쇠는 디테일(중국어로는 '시졔'·細節)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자잘하면서 단순한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죠. 그것이 생활이고 일입니다. 지금 같은 치열한 경쟁 시대는 웅대한 지략을 품은 전략가보다는 작고 평범한 일도 꼼꼼하게 처리하는 관리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중국 경영학자 왕중추/
―디테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디테일이란 어떤 일의 중심이나 기초가 되는 부분을 말합니다. 단순한 잔일과는 다르죠. 여기 책상 위에 있는 연필꽂이를 예로 들면 색깔, 모양, 재료 등이 다 디테일에 속합니다. 물건을 만들 때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하는 핵심 부분인 것이죠. 하지만 이 제품을 어떤 종이로 싸서 무슨 박스에 넣느냐는 것은 간단한 잔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핵심 제품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주 귀중한 물건을 포장할 때는 포장재료도 디테일이 될 수 있지요. 예전에 한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기자가 마이크를 켜놓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어요. 가장 기본적인 디테일을 소홀히 한 것이죠."
■'대충대충, 적당히'는 망하는 지름길
그러나 왕중추(汪中求) 소장은 "대장부는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의 중국인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을 신랄히 비판했다. 1%만 어긋나도 전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얼그룹의 장루이민 회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인 직원에게 하루에 책상을 6번씩 닦으라면 그대로 하는데, 중국인 직원은 처음 이틀간은 6번 닦고 다음 날부터는 5번, 4번으로 차츰 횟수가 줄어든다고요. 중국산 제품이 해외에서 비싼 값에 팔리지 못하는 것은 다 이런 디테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가장 싫어하는 말도 '대충'과 '적당히'였다고 그는 전했다. 저우 전 총리는 국빈(國賓) 만찬이 있을 때 자신은 먼저 국수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실제 연회에 나가서는 먹는 시늉만 하면서 손님이 식사를 잘 하는지 정성껏 챙기기 위해서였다.
―독일과 일본을 디테일에 강한 나라로 꼽는데, 그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나라의 문화적 배경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중국이 디테일에 약한 이유는 잘 압니다. 중국은 큰 것만 중시하고 작은 건 가볍게 여기는 문화가 오래도록 전해져 왔습니다. 역사상 많은 철학자·사상가·문학가·예술가가 있었지만, 위대한 과학자나 수학자는 별로 없어요. 옛날 문헌을 뒤져봐도 숫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중국의 옛 의학서적을 보면 약재(藥材)를 얼마나 섞을지 정확한 숫자가 없습니다. 맥박도 '1분당 몇 번'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약하다'는 식으로 비유합니다. 이렇게 하면 정확한 기술 전수가 안 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감(感)으로 익혀야 하는데, 실수할 경우도 많죠."
―일본 기업은 어떤 면에서 디테일이 강한가요?
"몇 년 전 상하이에서 신설한 내부순환도로에 안전 문제로 1t 이상 화물차가 못 다니게 했습니다. 그 도로가 개통된 지 한 달 만에 일본 업체가 0.9t짜리 화물차를 내놓고 팔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적시에 제품을 내놓는 기술력이 결합된 것이죠.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전기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생전에 늘 '어떤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말라'고 얘기했지요."
■위대한 전략도 세세한 디테일을 챙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요즘 경영자들은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는 추세입니다. 디테일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창의성을 억압하지 않을까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정도(程度)가 있어요. 작고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기도 불가능하죠. 하지만 디테일은 태도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구, 완벽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작고 사소한 걸 무시하면 만회할 수 없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천리 둑도 작은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집니다."
왕 소장은 중국 시장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FC에 도전장을 냈던 현지 패스트푸드 업체 룽화지(榮華鷄)를 예로 들었다. 1990년대에 이 업체는 "KFC가 가는 곳에는 우리도 간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중국 사람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고 호기롭게 덤벼들었다.
이 회사는 초기에 반짝 실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6년 만에 수도인 베이징에서 사업을 접고 지방으로 철수하는 신세가 됐다. KFC는 양념 배합비율, 고기와 야채 써는 순서, 조리시간, 청소 순서까지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직원을 교육하는 반면, 룽화지는 치킨에 뚜껑도 덮어놓지 않고 고객이 보는 앞에서 파리채로 파리를 잡았으니 경쟁이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2008.12.1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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