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 시험에 응시했던 30대 물리학자와 25년간 고시를 준비하다 쪽방에서 숨진 40대 남자의 얘기는 서로 별개의 뉴스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
서울 강서구청 환경미화원 공채에 응시한 K씨(37세)는 지방 국립대에서 물리학을 전공,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동안 공사장에서 막노동도 하고, 지금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일을 한다는 것으로 보아 '물리학'이 그의 생활에 별로 도움을 못 준 것 같다. 지난 12일 칼바람 부는 중학교 운동장에서 그는 20㎏짜리 모래주머니를 지고 50m를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18초는 돼야 '안정권'이지만 22초를 넘겨 낙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험을 보는 순간 그에게 절실했던 것은 청춘을 바쳐 얻은 물리학 지식보다 강하고 날쌘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8일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L씨(45세)는 중·고등학교 때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고 한다. 서울 K대 법대를 장학생으로 들어간 그는 줄곧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1차 시험에 서너 차례 합격했지만 2차 관문은 넘지 못했다. 최근 그는 법무사 시험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형제들의 도움으로 25년간 놓지 않았던 그의 꿈은 결국 2평 크기의 쪽방에서 돌보는 이 없는 외로움 속에 꺼지고 말았다.
두 사람 사례를 개인 능력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 밑바탕에 '기형적인 한국 교육체계'라는 구조적 문제가 깔려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대학생을 너무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대학 진학률이 83%를 넘는다. 10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83명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얘기다. 원하는 사람 누구나 대학을 가니 좋은 사회 같지만 우리나라는 '학교부문의 인력공급(졸업생)'과 '산업계의 인력수요(일자리)' 간 '부정합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매년 50여만 명이 대학 문을 나서지만 이들은 중소기업 생산현장 같은 '거친 일자리'를 외면하고, 공무원·공사·대기업 등 소위 '좋은 일자리'에만 몰린다. 석·박사를 위한 '좋은 일자리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어 K씨 같은 중도 포기자가 생긴다. 그 결과 좋은 일자리의 '좁은 문'은 취업재수생과 신규 지원자로 넘치고, 고용의 7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넓은 문'은 늘 비어 있다. 한국에서 '사람 구실' 하려면 대학을 가야 하고, 너도나도 다 가다 보니 역설적으로 '대학 졸업=실업자'라는 '망국적 교육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대학 진학률은 60%를 넘지 않는다. 그곳 부모들이 돈이 없어서 자녀를 대학에 안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에 그렇게 많은 고학력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
결국 해법은 대학과 대학생을 대폭 줄이고, 기술을 익힌 고졸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러려면 정부는 자립형 사립고 같은 '수월성 교육정책'에만 매달릴 게 아니다. 인문계고를 줄이고 '마이스터고(高)' 같은 직업학교에 학생들이 몰리도록 하는 정책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고졸 기술인력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대체하여 중소기업을 살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려면 그들에게 적절한 임금과 복지를 보장해주는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 혼자서 해결할 수 없고 경제계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K·L씨의 소식은 우리 교육의 기형적 상황에 대한 '경보음'이다. 이런 경보음이 얼마나 더 울려야 우리 교육은 정신을 차릴까?
지해범 기자(조선일보, 2009.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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