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추천 문학작품

자운영

죽장 2007. 3. 13. 08:55
자운영, 그 관대한 사랑 속에서
    
▲ 그대의 관대한 사랑. 자운영의 꽃말입니다.(전남 화순 남면의 한 논에 지천인 자운영)
ⓒ2005 오마이뉴스 이주빈

그대의 관대한 사랑. 자운영의 꽃말입니다. 꽃말처럼 자운영은 살아서도, 또 죽어서도 인간과 인간의 대지를 위해 헌신합니다. 어린 순은 나물이 됩니다. 풀 전체는 약재로 쓰입니다. 꽃이 지면 그대로 썩어 거름이 됩니다.

그렇다고 자운영이 여러 해를 사는 것도 아닙니다. 벼를 추수하는 가을에 태어났다 벼를 심는 이듬해 봄, 자운영은 짧은 살이를 마감합니다. 짧지만 넉넉하게 살다가는 모습, 아름답지 않습니까.

분홍이 짙어 보랏빛마저 감도는 자운영 꽃잎을 바라봅니다. 속으로 깊어가는 사랑의 색깔이 지상에 있다면 바로 저 빛깔이 아닐까요. 깊어서 아름답습니다. 깊어서 숭고합니다. 겉만 치장해 유혹하는 서툰 사랑, 어설픈 인생살이가 부끄럽습니다.

▲ 농부들은 자운영을 '풀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화학비료대신 자운영을 천연비료로 씁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주빈


모내기를 앞둔 논에 자운영이 한창입니다. 수입개방으로,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갈수록 농촌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져 갑니다. 그래도 농부는 어김없이 논에 자운영을 뿌렸습니다. 독한 화학비료 대신 지는 자운영을 갈아엎어 천연비료로 쓰기 위함입니다.

순하디 순한 마음은 자운영이나 농부나 매한가지입니다. 모두를 내어주고도 속으로만 우는 자운영과 농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땀 흘려 노동하는 이가 잘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그냥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좋은 세상인가요.

자운영이 지는 날 경운기는 힘차게 일어서겠지요. 묵은 논을 갈며 경운기가 헤쳐 가는 논두렁 어딘가에서 웃는 낯을 한 대지의 벗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또다시 자운영 씨가 논에 뿌려지는 가을 어느 날, 구성진 풍년가 한 가락도 오지게 들었으면 좋겠고요!

 

출처 오마이뉴스 이주빈(clubnip)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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