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냉이

죽장 2005. 10. 13. 13:16
  한줌 뽑아서 내밀면 어머니는 금방 감정을 하신다. 나는 냉이만 뽑았지만 게 중에는 냉이보다 냉이를 닮은 것들이 더 많았던지 정작 어머니의 앞치마 속에로 들어가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냉이를 알아보는 내 눈이 쉬원찮아도 흡족해하시며 가려 담고는 하셨다. 쌓이는 냉이의 양이 적어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 표정으로 인하여 내 마음은 편안했다.

  이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며칠 후면 새 학기를 맞아 학교가 있는 객지로 떠날 참이었는데, 어머니는 느닷없이 냉이를 캐려가자는 것이었다. 추운 줄 알고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었으나 바깥에는 봄기운이 제법 돌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호미를 쥔 어머니는 서둘러 마을 뒷산 쪽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아버지 무덤이 있는 밭이었다. 그제야 냉이를 캐러가자고 한 어머니의 마음이 와닿았다.

  밭뒷머리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이 겨우내 무탈한지를 확인할 겸, 객지로 떠나는 아들의 마음에 아버지를 인식시키려는 의도였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머니는 저세상에 있는 영감에게 아들이 공부를 잘하고 돌아오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전달할 참이었다. 냉이를 캐는 것을 핑계 삼아 아버지 산소 옆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것 또한 어머니의 내심일 터였다.

  어머니는 허리를 펼 때마다 무덤을 힐긋힐긋 바라보았고 나는 여전히 모른 척 했다. ‘영감, 이 녀석이 곧 떠난답니다.’ 하고 말하는 듯 했다. ‘아버지 공부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하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모자의 눈길이 마주치자 어머니는 ‘이만하면 냉이는 충분하다’며 일어섰다. 산을 넘어오는 바람이 약간은 차가웠다.

  마당에서 잡초를 뽑았다. 봄 햇살이 따스해지기 바쁘게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잡초들이다. 이들은 어느 구석에선가 하나가 발견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일시에 돋아난다. 올해도 잡초는 어김없이 돋아나면서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기고 건재해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호미 끝에 걸려 올라오는 풀들 중에는 어머니와 함께 뽑던 냉이도 있었다. 그날만큼 많지 않은 단 몇 뿌리의 냉이지만 버리자 않고 따로 모았다. 된장찌개에 넣도록 아내에게 줄 작정이다. 평소에도 즐겨먹는 된장찌개지만 오늘은 특별히 오래 잊었던 ‘어머니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오늘 저녁 밥상머리 대화의 주제는 냉이이다. ‘우리 살고 있는 꼴이 잡초 같으냐, 냉이 같으냐?’고 자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밥상 한가운데서 어머니가 듣고 계시는 경건한 자리라 그런지 부부간에 오가는 말도 다소 묵직하다. ‘잡초는 아니고 냉이도 아니고 냉이와 비슷하다’는 대답이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 맛, 그 시절의 냉이 맛을 충분히 즐겼다.

  냉이가 뭔지 잘 몰랐던 그 시절이 그립다. 부모님께서 나란히 누워계시는 고향마을 뒷산 아래 묵정밭에는 올해도 냉이가 무진장 자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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