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23, 조선일보, 만물상]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3년이면 너나없이 힘든 시절이긴 했다. 그래도 대구 명덕초등학교 4학년 이윤복의 헤어나기 어려운 가난엔 온 국민이 눈물지었다. 윤복이는
여섯 살에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병든 아버지, 동생 셋과 함께 움막에서 살았다. 누군가 염소를 치려고 지은 것이어서 비 오면 여기저기 깡통 놓고
빗물을 받아야 했다. 윤복이는 학교가 파하면 껌팔이를 해 번 돈으로 국수를 사다 가족을 먹였다.
▶한 푼도 못 번 날이면 저녁을
굶고 이튿날 아침 동냥을 나갔다. "한 숟가락만 보태주세요." 하소연해 모아온 밥을 식구들이 나눠 먹었다. 동냥 다니다 보면 같은 반 아이가
있는 집 문을 두드릴 때도 있었다. 틈틈이 구두닦이, 빈 병 줍기, 보리 이삭줍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바로 아래
여동생이 남의 집 식모살이라도 하겠다며 가출했다. 윤복이는 이런 일들을 매일매일 일기에 썼다. 그해 12월 20일 일기는 이렇다. '하늘을
쳐다보니 참말로 맑았습니다. 우리 식구도 저 하늘처럼 말끔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요?'
▶그래도 따뜻한 이웃들이 윤복이를 버티게 해줬다. 같은 반 아이들은 보리밥에 짠지 반찬 얹은 도시락을 윤복과 나눴다. 부모와 길을 가다 윤복을 만나면 부모를 졸라 일부러 껌을 사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은 공책과 연필 같은 학용품을 사주며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이 살라"고 했다. 동냥을 가면 수북한 밥과 함께 쓰던 옷가지를 꾸려주는 집들도 있었다.
▶윤복이 일기는 선생님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1965년 김수용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영화는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해 서울에서만 30만 관객을 불렀다. 지금으로 치면 전국 1500만명쯤 되는 기록이라고 한다. 그 뒤론 영화 필름이 사라져 다시 볼 수 없었다. 대만에서 찾아낸 필름을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해 5월 22일부터 한 달간 무료로 상영한다. 윤복이 동냥해 온 밥을 동생들 입에 떠넣어 주는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윤복은 1990년 병으로 세상을 떴다. 동생들은 그의 바람대로 넉넉하진 않아도 건강하고 사이좋게 자랐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한 세대 남짓 전 일인데 까마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다 같이 어려웠지만 바로 그래서 서로 배려하고 아끼고 아픔을 나누던 시대였다. 그 사이 우리는 국민소득 90달러에서 3만달러를 내다보는 부자가 됐다. 먹고살 만해졌는데 우리 사회는 왜 이리 슬픔이 끊이지 않는가.
[주]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칠성시장 입구를 배경으로 찰영하던 관경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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