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과 장원방이 있는 선산이야기
‘장원방’을 아십니까? 그럼 ‘조선인재 반은 영남에서 나오고, 영남인재 반은 선산에서 난다’는 말은 들어 보셨겠지요? 맞습니다. 조선조 숙종 때의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선산지역에서 인재가 많이 나온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인재가 쏟아져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지역에서 발간된 신문에서 관련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고려 말 우왕 때부터 조선조 영조시대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와 이문리 일대의 한마을에서 무려 14명의 장원, 부장원, 문과 급제자들이 배출되어 자연스럽게 장원방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이 일대가 서당마을로 불리고 있으며, 서당마을을 출발한 선비들이 과거장으로 향할 때 넘어갔던 길목이었던 뒷산 봉우리를 장원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배출된 인물들의 면면도 낯익은 분들이 많습니다. 세종 원년인 기해방 병과에서 장원한 김숙자, 세종 20년 무오방 을과에서 장원한 하위지, 그리고 세조 4년 무인방 병과에서 급제한 김종직이 그들입니다. 고려 우왕 14년 무진방 병과에서 급제한 김치에서부터, 영조 14년 무오시년에서 장원한 박춘보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선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탄생하여 역사에 남을 인물이었으니 말입니다. 길재-김숙자-김종직-하위지로 이어지는 학문적 맥은 조선 성리학의 기둥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빼어난 학문 뿐 아니라 고려 패망 후 충절의 상징이 된 길재, 단종 복위를 꽤하다 실패하여 처형당한 사육신 하위지의 행동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선산 땅은 또 어떤 곳입니까? 앞에는 금오산, 뒤에는 비봉산, 그리고 넓은 앞들로는 감천이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도 특이합니다. 특히 선산읍의 정수리에 위치한 비봉산은 백두대간 낙동정맥에서 뻗어내린 소백산 줄기가 상주의 갑장산을 거쳐 동으로 내달려와 형성된 산입니다. 봉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으니, 바로 동쪽의 교리 뒷산과 서쪽의 노상리 뒷산이 날개에 해당됩니다. 봉의 목이 앞으로 불쑥 도드라져서 입으로 옛 군청 청사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 합니다.
옛 사람들은 봉황이 날아가면 상서로운 기운이 흩어진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어떻게 하든지 날아가지 못하게 붙들어두려 했음을 인근의 지명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감천 너머 물목마을 뒤의 황산(皇山)은 수컷인 봉이 암컷인 황을 만나 아기자기하게 잘 살라는 뜻이라 합니다. 고아읍에 소재한 망장산(網障山)은 봉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쳐놓는다는 뜻으로 그 아래에 망장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선산 서쪽의 죽장(竹杖)리는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 봉이 먹을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며, 선산읍 동남쪽에는 온갖 꽃들과 새들이 있어 봉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화조(花鳥)리가 있습니다. 또한 남쪽의 무래(舞來)리는 딴 곳의 봉황이 와서 노는 곳이라 합니다. 상상 속의 봉황을 실제의 것으로 수용하고 풍수화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봉황의 기운이 서려있는 선산에서 인재가 많이 탄생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봉황은 날아가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장원방이 존재했던 그 곳 서당마을에는 지금도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서당에서 공부를 하고 과거를 통하여 진출했지만 지금은 학교를 졸업한 지역의 인재들이 사회 각처에 진출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봉황이 실재하는 선산의 장원방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음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재들이 배출되리라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봉황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며, 인재들이 구름처럼 태어나는 선산의 이야기를 널리 전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서당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응시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직분을 다한 선비로서의 참모습을 후세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훌륭한 조상들의 모습이야말로 첨단 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됩니다. 선산의 이야기를 보전하고 알리는 것은 오늘 우리들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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