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엄마 퍼터'의 힘

죽장 2013. 4. 3. 10:44

[2013.4.3, 조선일보 만물상]

'엄마 퍼터'의 힘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

 

쿠바 출신 삼성화재 프로배구 선수 레오는 지난주 챔피언전 세 경기에서 110점을 올려 MVP가 됐다. 스파이크를 꽂아 넣을 때마다 관중석 어머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2009년 푸에르토리코로 망명했다. 2만원도 안 되는 쿠바 대표팀 월급으론 홀어머니와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었다. 작년 말 그가 한국에 오자 구단은 쿠바에서 어머니를 모셔왔다. 3년 만에 어머니와 살며 레오는 펄펄 날았다. "엄마는 내 우상, 늘 내일을 생각하고 오늘을 견디라고 하셨다."

 

▶여자 프로농구 스타 전주원이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하자 어머니는 영 못마땅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한 딸의 사주를 봤더니 '판·검사 할 팔자'라고 했다. 그래도 늘 떡을 해 쫓아다니며 딸과 선수들을 먹였다. 실업팀에 들어갈 땐 가방을 싸주며 울었다. "내가 무슨 호사하겠다고 딸을 고생시키나." 딸이 '엄마 선수'로 뛰게 외손녀도 돌봐줬다. 전주원이 꼴찌 팀 우리은행 코치를 맡아 보름 전 챔피언전을 치를 때도 팀 숙소로 식혜를 담가 왔다.

▶어머니는 최종전 전날 새벽 딸의 우승을 기도하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전주원은 우승 트로피를 어머니 앞에 바쳤다. "냉장고에 엄마 식혜가 남아 있지만 못 먹겠다"고 했다. 프로야구 이승엽은 이름 자 '承'이 새겨진 목걸이를 "죽을 때까지 벗지 않겠다"고 했다. 6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앞서 준 선물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 곁에 존재하며 힘이 돼준다.

타이거 우즈는 왼손목에 흰 실을 감고 경기한다. 태국 불교에서 복을 빌며 묶어주는 '싸이씬'이다. 골프채에 씌우는 호랑이 모양 헤드커버엔 태국어로 '엄마의 사랑'이라고 수가 놓여 있다. 태국인 어머니가 해마다 만들어주고 그해 우즈가 우승하는 대회 이름을 써넣는다. 우즈는 대회 마지막 날 꼭 붉은 셔츠를 입는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태국 불교를 상징하는 빨간색이 힘을 준다고 해서다.

 

▶D A 포인츠는 올해 미 프로골프 두 대회만 컷을 통과했다. 그런 포인츠가 엊그제 신들린 퍼팅으로 셸휴스턴오픈을 제패했다. "30년 된 퍼터가 마술을 부렸다"고 했다. 열두 살 때 엄마의 '핑' 퍼터를 빌려 썼다가 차고에 뒀던 것이다. 골프는 마음이 승부를 가르는 '멘털 스포츠'다. 특히 퍼팅이 예민하다. 스포츠심리학자 봅 로텔라는 "퍼팅 비결은 스트로크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퍼터에 깃든 엄마 사랑이 아들을 침착하게 해줬을 것이다. 모든 자식에게 어머니는 신(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