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신지애의 홀로서기

죽장 2012. 9. 18. 12:05

[2012.9.18, 조선일보]

신지애의 홀로서기

 

신지애가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주변 사람 중에 하루만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다면 누구를 보내겠느냐." 그는 "아버지"라고 답했다. "시키는 게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신지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5년 가까이 20층 아파트 계단을 한 시간 만에 일곱 차례씩 오르내렸다. 가난한 목사 아버지가 고안한 체력 단련법이었다. 골프화가 맞지 않아 발가락이 아프자 발가락을 누르는 부분을 도려내고 퍼팅 연습을 했다.

▶아버지는 관사 마당에 10m 폭으로 10~120m 금을 그어놓고 샷 훈련을 시켰다. 딸이 그 열두 구간에 차례대로 공을 열 개씩 떨어뜨릴 때까지 한없이 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신지애가 얻은 별명이 '초크 라인(Chalk line)'이다. 분필 선처럼 똑바로 공을 날린다는 얘기다. 그에겐 '미소 천사'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멋진 플레이를 하고 나서는 물론이고 엉뚱한 실수를 해도 웃는다. 함박웃음을 머금으면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더 작아진다.

▶신지애의 '스마일 페이스'엔 세계 골프팬과 언론도 반했다. 그는 "억지로 웃는 건 아니고 잘될 땐 좋아서, 안될 땐 어이없어서 웃는다"고 했다. 워낙 강심장이고 승부욕과 집중력도 강해서 "곰같이 생겼는데 여우"라는 말도 듣는다. 엔간해선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는 신지애가 작년 말 눈물을 떨궜다. 혼자 사는 노인들께 쌀과 라면을 드리러 갔다가 차디찬 방바닥을 만져보고서였다. 그는 '꼬마 천사' '기부 천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해마다 1억원 넘는 돈을 내놓는다.

▶신지애는 고교 때 프로에 데뷔한 뒤 국내 대회 절반을 휩쓸며 '지존'으로 불렸다. 딱 4년 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하고 세계로 나간 뒤엔 LPGA 상금왕·신인왕·다승왕 3관왕에 올랐다. 그러다 재작년 말부터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가 올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을 위해 골프를 했고 프로가 된 뒤엔 팬과 미디어를 위한 골프를 했다. 지쳤다." 그는 "이젠 나를 위해 플레이하고 싶다. 남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더니 마음이 편하고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신지애가 어제 브리티시오픈까지 연달아 두 대회를 우승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별명 '파이널 퀸(역전의 여왕)'답게 2년 슬럼프를 떨쳐내고 확실하게 돌아왔다.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는 올 들어 코치 없이 혼자서 스윙을 가다듬었다. 스윙보다 정신적으로 홀로 서는 과정이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신지애에겐 이제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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