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8, 조선일보]
'엄마 아빠 문패 건 집 지어줄게' 비닐하우스 소년의 기적
가난과 절망 딛고 '금빛 비상'… 한국 체조 사상 첫 金 양학선
그 아들 - 에하루 4만원 훈련비 꼬박 모아 月 80만원씩 매달 집에 부쳐
"부모님 나 때문에 늙으셨죠"
그 부모 - "이렇게 초라하게 사는 게 아들에게 해될까 걱정"
그리고 그 스승 - 광주체중·고 때 오상봉 감독 소년 양학선 먹이고 재워
- 7일 런던올림픽 남자 체조 도마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깨물어보는 양학선. /AP 연합뉴스
전북 고창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시골길을 20분쯤 달리면 공음면 석교리 '남동 마을회관'이 나온다. 거기서 다시 흙길을 따라 5분쯤 걸어 들어가면 고추·깻잎을 심어놓은 밭 옆으로 비닐하우스가 덩그러니 서 있다. 개들이 컹컹 짖어대고 키가 작달막한 부부가 나와 손님을 맞는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방이 하나 있다. 런던올림픽 체조 남자 도마에서 7일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20·한체대)의 부모가 여기서 산다. 부모는 이곳을 '아들 명예의 전당'처럼 꾸며놓았다. 화사한 꽃무늬가 수놓인 벽면엔 양학선의 메달과 사진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광주광역시 달동네에서 미장일, 공장일 하며 어렵게 살아온 부모는 2년 전 양학선이 보태준 돈에 평생 모은 돈을 합해 고창군에 밭 1만㎡를 샀다. 동네에 작은 집터도 마련했지만 아직 집을 새로 짓지 못해 밭 옆에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비닐하우스 안이 가마솥처럼 푹푹 쪘다.
키 159㎝인 양학선보다도 한참 더 작아 보이는 어머니 기숙향(43)씨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우리 이렇게 초라하게 사는 거 아들한테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기'가 자기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다고, 인터뷰 많이 하라고 하데요."
◇지긋지긋했던 가난
양학선이 자라난 곳은 광주광역시 서구 양3동의 달동네다. 동네에서도 가장 좁은 골목 맨 끝 집, 금방이라도 천장이 무너질 듯한 창고 같은 단칸방에서 형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 양학선이 일곱 살 때 원래 살던 동네가 개발되면서 오갈 데가 없어지자 마을 통장이 '빈집이 있으니 들어와 살라'며 공짜로 내줬다고 한다.
- 7일 런던올림픽 체조 남자 도마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양학선의 어머니 기숙향(왼쪽)씨와 아버지 양관권씨가 살고 있는 전북 고창군 석교리 남동마을의 비닐하우스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어머니 기씨는“금메달 딴 효자 학선이가 엄마 아빠 문패가 달린 새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다”며 기뻐했다. /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가 공장일·식당일 등 닥치는 대로 일해도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텀블링 잘하던 소년 양학선에게 체조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없어 큰돈이 들지 않는 운동이었다. 학교에서 합숙 생활하며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가끔은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된 양학선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고된 훈련과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돈을 벌겠다며 합숙소를 여러 번 뛰쳐나갔다.
밥벌이에 바쁜 부모 대신 양학선을 정성으로 보살핀 사람이 광주체중·고에서 6년을 함께한 오상봉 감독이었다. 오 감독은 합숙 훈련이 없는 주말이면 양학선을 자기 집에 데려가 먹이고 재운 날이 많았다.
중2 겨울방학 어느 날 양학선이 정말 체조를 그만두겠다며 잠적해버렸다. 파출소를 돌아다니며 양학선을 찾아 헤매던 오 감독은 경북 포항의 한 여관방에서 양학선을 발견했다. 폭설이 쏟아지던 새벽, 3시간 동안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학선은 다음 날 조용히 훈련에 복귀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양학선은 "그때 감독님이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고 털어놨다.
◇"우리 아버지는 농부다"
방황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 양학선은 부쩍 철이 들었다. 어디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태릉선수촌 일일 훈련비 4만원을 모아 매월 80만원을 집으로 부쳤다. 오른쪽 어깨 인대가 끊어져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하루에 몇 번씩 전화로 안부를 묻고 어머니에겐 하루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얘기하는 살가운 아들이다. 경기도 일산 군부대에서 육군 하사로 근무 중인 형 학진(22)씨에게도 주말마다 면회를 간다.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자기 이름을 딴 최고 난도의 신기술 '양학선'으로 우승했을 땐 외신 기자들이 "부모님도 체조 선수냐"고 묻자 "우리 아버지 농사짓는다고 농부라고 말해주세요"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통역을 맡은 트레이너를 통해 "His father is a farmer"라는 문장이 외신을 탔다. 지난 2월 '코카콜라 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을 받았을 땐 시상식장에서 셔플댄스를 추는 경쾌한 세러모니를 선보였다.
어머니는 "부모로서 돈이 더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 우리 아기를 더 잘 뒷바라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양학선은 "운동이 힘들 때 부모님 얼굴을 떠올린다. 내가 방황할 때 너무 많이 우셔서 늙으셨다고 생각하면 채찍질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 부부는 비행기도 못 타봤지만 아들은 성공했다"며 "아들이 집에 오면 가장 좋아하는 라면 '너구리'를 끓여줘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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