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5.29, 조선일보]
"유목민 DNA 가진 한국인들, 적이 쳐들어오면…"
- 한국 적응력, 美 이어 최고수준 -
산업화 이후 한국 경제는 1인당 소득 1000달러, 1만달러 등 주요 고비를 넘자마자 공교롭게도 큰 위기에 부딪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국 경제는 일보 후퇴 후 이보 전진하는 놀라운 복원력을 보이며 경제 체질을 업그레이드했다.
2007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했을 때는 곧바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잠시 1만7000달러 선으로 후퇴했지만, 경제위기 극복의 모범국으로 꼽히며 3년 만에 2만달러 선을 회복했다. 1990년대 후반 소득 1만달러 선을 넘었을 때도 곧바로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나라 전체가 파탄 위기에 몰렸지만, 기업 경영과 국가 재정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대 오일쇼크도 한국이 반도체·가전·자동차 등 고부가가치·고기술 산업에 뛰어들어 인구 4000만명에 1인당 소득 2000달러의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 일곱 번째로 '20-50클럽'에 가입한 한국의 저력은 이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한국 특유의 오뚝이 DNA에서 나왔다. 이 같은 복원력(resiliency)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2010년 4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1으로 상향조정하면서 그 이유를 "한국경제가 전 세계적인 위기에서 예외적인 회복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경욱 OECD 대사는 "한국경제의 위기에 대한 적응력은 이제 전 세계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위기에서 극복하는 한국형 DNA의 밑바탕에는 한국인 특유의 단결력, 희생정신, 높은 교육수준, '빨리빨리'로 요약되는 신속한 결단 등이 녹아 있다. 이런 DNA가 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이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부총리)는 "한국인은 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유목민의 DNA를 가지고 있다. 적이 쳐들어오면 도망가든지 나가서 선제공격을 하든지 먼저 행동으로 옮기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조사에서도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 이어 '20-50 클럽' 가운데 두 번째로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뿐 아니라 개인이나 기업 차원에서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스토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DNA 때문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경제 자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형 복원력이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길게 보면 지금 세계 경제의 위기가 우리에겐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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