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17년만의 식사

죽장 2011. 5. 16. 13:36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일어서자

선생님께서는 ‘저녁 안 먹었지?’ 하시는 것이었다.

내 입에서 ‘먹고 왔습니다.’ 하는 말이 튀어나왔음에도

‘우리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하시며 일어서신다.

아마도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던 듯하다.

나는 참 잘 되었다 싶었다.

식사를 대접한 것이 까마득한 옛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식사 대접을 할 기회가 있으랴 싶어

말없이 따라 나섰다.


선생님께서는 큰 아파트에 혼자 지내고 계신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며 ‘고깃집으로 갈까, 횟집으로 갈까?’ 하시며

앞장서 걷는다.

팔순 노인이신지라, 걸음걸이가 아주 어둔하다.

식당에 들어서면서

‘자네는 가만히 있게, 오늘은 내가 할테니-’ 하신다.

난감했지만 그 시점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주변이 시끄러운 탓도 있지만 말이 잘 들리질 않으시는 듯했다.

내 목청도 조금씩 커졌다.

치아가 좋지 않으신지 음식물을 씹으면서 표정이 일그러진다.

난 식사를 하면서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는 일에 몰두하였다.

사실은 표정을 살피는 일보다 나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 일어섰다.

이미 예측한 그대로 계산대 앞에서 사제간의 다툼은 치열했다.

스승과 제자 양쪽 모두 한 치도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선생님을 힘껏 밀쳐낼 수도 없었다.

이러다가 스승의 날을 완전히 망치게 될까 걱정이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스승과 제자, 단 둘이 먹은 밥값을

선생님께서 내시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지금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저더러 어쩌라고 이러십니까.

몸싸움 보다 눈물의 읍소가 통했다.

마침내 선생님은 난감해 하시며 물러서셨다.


스승의 날을 맞아

퇴직하신지 17년만에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밝은 초저녁달이 따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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