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어려운 시험

죽장 2010. 11. 25. 10:00

[2010.11.25, 조선일보]

전문가도 어려운 '채권이론'이 수능 문제라니

안희상 대한생명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의 수학경시대회에 다녀왔다. 족히 수백명이 넘는 아이들이 운동장을 채우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수라고 한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지만 사설 경시대회에 이렇게 많은 아이가 참여하는지 처음 알았다. 주말 오후에 수학시험 보는 아이들 얼굴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정작 놀란 건 시험 수준이었다. 아무리 변별력을 요하는 게 시험이라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풀기에는 너무 어려워 보였다. 중학교 수준을 넘어설 정도였다. 한눈에도 학교 수업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이다. 문제를 제대로 못 푼 아이들은 낙담하고 다시 학원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부모들은 조급한 마음에 아이를 학교가 아닌 학원으로 달려가게 할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랄까? 지난 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언어영역의 '채권가격과 금리변동의 상관관계'에 대한 문항을 놓고 시비가 일고 있다. 아무리 변별력을 높이는 문제라고 하지만 언어영역에서 굳이 경제의 채권이론에 관한 문제를 낼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특히 채권의 경우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들도 까다롭게 여기는 분야이고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상품 중 하나다. 물론 지문을 독해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채권가격과 채권수익률이나 주식시장과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출제자들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최근 '통섭'이라며 학문 간의 영역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융합도 많은 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시중에는 인기 끄는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나와 있다. 하지만 수능은 학생들의 장래를 결정하는 국가적 시험이며 가장 객관적인 시험이어야 한다. 수능 기출문제는 이번뿐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후배들에게 출제 유형으로 남을 것이며 학생들은 이 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수능은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어야지 사교육 시장을 더욱 키우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시험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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