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교육 관련 자료

핀란드 '취업 중심' 직업학교

죽장 2010. 11. 12. 15:34

[2010.11.12 조선일보]

졸업후 바로 취업하더라도 대졸자와 월급 차이 없어…

입학 위해 재수도 마다 안해
현장 평가서 능력 입증해야 공인 기술자격증 취득 가능…

4명 중 3명만이 평가 통과

공교육의 힘만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 강국'이 된 나라가 있습니다. 북유럽의 핀란드입니다.

핀란드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전부입니다.

공부 시간은 한국 학생의 절반이고,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한 푼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 '국제학업성취도 비교연구'(PISA)에선 늘 세계 1위입니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조선일보가 핀란드 교육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핀란드 학교에선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지,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장기 연재합니다.
"지난주 책에서 배운 걸 곧바로 실습하죠. 재미있어요."

회색 멜빵 바지를 입고 손에 묻은 톱밥을 털던 악셀리 단스카넨(16)군은 전형적인 노동자풍의 모습이었다. 베니어판이 굴러다니고, 전기톱 소리가 끊이지 않던 작업실도 영락없는 목공소였다. 하지만 이곳은 핀란드 에스푸(Espoo)시에 위치한 옴니아(Omnia) 직업학교의 교실이다. 우리의 전문계고에 해당하는 핀란드 직업학교들은 이처럼 교실을 실제 직업 현장과 똑같이 만들어 놓고 있다. 2층에 올라가니 미디어과 학생들이 모델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작가 스튜디오와 똑같다. 그래픽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모니터가 두 개 달린 컴퓨터로 웹디자인을 연습한다. 소프트웨어까지 기업들이 쓰는 것 그대로다.

이 학교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기술'을 배우고, 2학년이 되면 직업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한다. 건축과 학생들이 학교가 마련한 200㎡(60.6평) 부지에 집을 지으면 조경과 학생들은 그 옆에 정원을 만든다. 미용과 학생들은 학교가 차린 미용실에 나가 실습을 한다. 실습만 하는 게 아니라 돈도 번다. 지난해 건축과와 조경과 2학년 학생들이 지은 집은 50만유로(약 7억8000만원)에 팔렸다. 수입은 다시 교육비로 쓰인다.

한국적 교육 상식과는 정반대지만 핀란드에서는 직업학교 들어가기가 일반고보다 힘들다. 지난 6월 핀란드 고교 입시에서 종합학교 9학년(우리의 중3)의 일반고 지원자가 3만3000여명에 그친 반면 직업학교엔 두 배가 넘는 6만7000여명이 지원했다. 직업학교에 오고 싶어 10학년 과정을 들으며 재수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핀란드에서 중·고교를 나와 헬싱키 공대에 재학 중인 교민 송한(23)씨는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해도 대졸자보다 월급이 적지 않고 어떤 경우엔 더 많다"며 "일찍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직업학교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직업학교가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보통 3학년 때 이뤄지는 현장 실습 평가에서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업무 능력을 입증해야 공인 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실력이 안 될 경우 기술자격증을 받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된다. 핀란드 국가교육청이 2005~2008년 직업학교 학생 13만8481명을 추적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7.1%가 학교에서 중도 탈락했고 23.8%는 과정을 모두 이수했어도 자격증을 받지 못했다. 그만큼 평가가 엄격하다는 얘기다. 반면 현장 실습 평가를 통과한 졸업생은 4명 중 3명꼴(73.3%)로 취업에 성공했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2.9%에 불과했다. 대학 진학자가 취업자의 두 배가 넘는 한국 전문계고의 현실과는 정반대다.

옴니아 직업학교 교장 유하페카 사아리넨(Saarinen)씨는 취재 내내 "학교가 학생들의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 배운다(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고 했습니다. 우리 학교의 목표는 상급학교 진학이나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