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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장 행복한가...

죽장 2010. 8. 18. 18:07

[2010.8.18, 중앙일보]


언제 가장 행복한가


- 직장인은 퇴근 뒤, 주부는 낮시간 -


  한국인은 하루 중 언제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낄까. 많은 이가 ‘말할 때’와 ‘먹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가장 행복할 때를 18점으로, 가장 불행할 때를 -18점으로 측정했을 때 말하기와 먹기는 모두 10점 이상을 기록했다.

  여가활동을 할 때도 사람들은 행복을 느꼈다. 운동·산책·취미생활·종교활동 등 신체적·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여가활동이 TV시청·독서·음악감상 등 정적인 여가활동에 비해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과 연령에 따라 하루 중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이 달랐다. 연구팀은 만 19세 이상 한국인 160명을 학생(19~29세), 직장인(20~49세), 전업주부(30~59세), 노인(60세 이상)으로 나눠 이들이 하루 중 느끼는 행복감을 시간대별로 조사했다. 직장인과 대학생은 평일 저녁과 주말에 행복감이 차츰 높아진 반면, 전업주부는 평일과 주말 모두 낮 시간에 가장 행복했다. 직장인들은 퇴근 이후 가족과 함께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지만, 주부들은 가족이 없는 낮 시간에 더 행복을 느끼는 셈이다. 학생의 경우에는 친구나 선후배와 있을 때 가족과 함께하는 것과 비슷한 행복감을 느꼈다.

  행복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달랐다. 고개 숙인 40대 한국 남성. 반면 40대 여성은 상대적으로 가장 행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40대 남성들은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 개인적 측면(자신의 성취·성격·건강)은 물론 사회적 측면(인간 관계·소속집단 관계)에서 모두 만족 수준이 낮다.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40대 남성이 행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40대 남성을 제외한 모든 집단의 ‘삶에 대한 흥미’ 평균 점수는 3.34점(1점: 전혀 느끼지 않는다, 7점: 매일 느낀다)이다. 반면 40대 남성이 삶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는 평균 3.07점.

  40대 남성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적인 문제’와 ‘일 또는 업무’였다. 이 두 가지는 한국의 성인 남녀 대부분이 갖고 있는 주요 고민거리다. 하지만 40대 남성들에게서 두드러졌다. 조사팀(팀장 서은국 연세대 교수)은 “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라며 “자신의 일과 삶에 의욕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40대 한국 남성의 자화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40대 중년 여성의 ‘가장 높은 행복감’도 흥미롭다. 40대 여성은 ‘긍정적 정서’를 자주 표현한다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즐거움·행복함 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표현한 정도’를 물었다. 40대 여성의 평균은 5.08점. 다른 성인 남녀 집단의 평균 4.84점보다 비교적 높다(1: 전혀 표현하지 않았다, 7: 매우 자주 표현했다). 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하는 대다수 여성은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야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며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도 바깥 활동에 계속 얽매이는 반면 여성은 40대가 되면 가사와 육아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조사팀은 행복해지기 위해선 ‘긍정적 정서 표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긍정적 정서는 그것을 숨기기보다 겉으로 드러낼 때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 독일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의 연구가 유명하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하고, 다른 그룹은 미소를 짓지 못하게 한 후 각각 재미있는 만화를 보게 했다. 그 결과 정서 표현을 억제한 집단보다 촉진한 집단이 더 큰 재미를 느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안면 피드백 이론(facial feedback theory)’이라고 한다. 표정이 감정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감정 상태를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사팀은 “한국인은 정서 표현에 인색하다. 한국 남자들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도록 사회화된다. 슬퍼도 울지 않고 기뻐도 웃지 않는 남자가 진짜 남자라고 배운다. 이러한 문화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