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 달 전 우리나라는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못했던 16번째 우승이었는지라 선수단에는 모처럼 큰 관심이 쏠렸다. 조선닷컴은 한국 선수단이 귀국한 후부터 한 달간 울산·창원 등 전국을 누비며 금메달리스트 13명을 차례차례 만났다.
당초에는 '세계 1등의 비결'을 그들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고자 했다. 그런데 얼굴을 맞댄 금메달리스트들은 스스로 일군 결과에 뿌듯해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벽과 편견(偏見)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들이 보는 우리 사회는 기능인을 깔보고, 얕잡아 보는 원망스러운 집단이었다. "대회 이틀째 성적이 신통치 않았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기능공'이라고 무시당할 생각에 두려움이 닥치더군요. '손에 기름 묻히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는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면서 이를 악물었죠."(철골구조물 부문 금메달 김준영)
한 금메달 수상자는 귀국 후 모처럼 자랑스럽게(?) 택시를 탔다. 그런데 직업을 물어본 한 택시기사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적당히 하다가 사무직으로 길을 바꿔 승진이나 빨리 하는 게 좋을 것이오."
그들은 많아야 25세, 대부분 22세를 넘지 않는다. '어리다'는 표현이 적절한 17세짜리 고3 학생도 있다. 산업화·민주화의 혜택을 누리며 풍요로움·여유로움에 그저 해맑아야 할 나이다. 하지만 그 젊은 가슴 속 한편에 한(恨)과 설움의 응어리가 뭉쳐져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런 상황을 만든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더 한심한 경우도 있다. 사회의 잘못된 편견은 젊은이들의 꿈·희망을 밟아 버리는 단계까지 악화돼 있다. 중학교 때 전교 5위권의 우등생이었던 이준하(현대중공업)씨. 컴퓨터수치제어(CNC) 밀링 분야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공고(工高)를 소신 지원했다. '5~6세 때부터 자동차 이름을 줄줄 외우며 자동차는 내 운명'이라는 최원석씨나 '손재주만큼은 내가 최고'라며 중2 때 이미 공고 진학을 결정한 김준영씨도 공고 자원자였다. 하지만 공고생 시절 이들이 겪은 어려움은 '공부'가 아니라 '기름쟁이를 바라보는 차디찬 시선'이었다. "공고 교복을 입고 다닐 때 '공부 못하는 날라리'처럼 쳐다보는 시선을 늘상 느꼈어요. 때려치우고 싶었죠."
그들 말대로 '미치고 싶어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사회가 그들의 꿈을 좌절시킨다면 그 나라가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실업계 고교생 숫자는 50만명 가까이 된다. 이들 중 꿈을 가진 젊은 기능인력들이 사회적 편견에 중도 하차한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아찔할 따름이다.
한국이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의 터널을 남보다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류 제조업 경쟁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LG전자, 현대차,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들이 토해내는 세계 상품은 제조업 분야의 일류 제품군(群)들이다. 쿠바의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지폐에 현대중공업이 만든 선박용 엔진 사진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한국의 제조업과 기능인들의 실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외국 유학파(派) 이공계 박사들의 귀국이 매년 큰 폭으로 줄고 있다. 비싼 돈을 투자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이공계 박사들, 여기에 더해 사회적 편견 때문에 긍지는커녕 되레 중도 포기하는 젊은 기능인력들이 많아진다면 기술자 공백(空白)은 필연이고, 당연히 미래를 기약하기는 어렵다. "열정과 집념이 그 정도면 뭔들 못할까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더 노력하시길. 내 아들보다 더 자랑스럽습니다." 이들을 한 네티즌의 댓글로 격려해 주고 싶다.
[2009.10.9,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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